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집안이 어려워서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등교하는 학생의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충분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온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PC방에 가서 놀기 위한 유흥비나 용돈이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부교재로 선정된 문제집을 살 돈이 없어서 한 학기 내내 책 없이 수업을 듣던 친구가 있었고 나라에서 지원받는 점심, 저녁 급식이 하루 식사의 전부인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들에게 근로는 용돈벌이가 아닌 생계수단이었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정부에서 해주는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은 학비와 교과서 비용, 급식비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청소년의 야간 근로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과연 어른이 결정할 일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굳이 야간 근로를 해야하는지,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에 근로를 해선 안 되는 건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상 야간에만 근로를 할 수 밖에 없는 학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학생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아낼 길이 없는 갖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어딘가에는 있다. 
 그래서 청소년의 야간 근로를 법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 현행처럼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서 야간에도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다. 청소년들을 보호한답시고 그 학생이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르는 야간 근로를 법으로 금지하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입법자가 법의 보호대상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몰아붙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러한 법을 만들기 보다는 한부모가정 자녀, 소년소녀 가장뿐만 아니라 법에서는 지원받을 자격이 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원이 꼭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실상 청소년들은 상황이 어려워도 어디서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제도권 교육 안에 있는 청소년 또한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정부에서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많지 않다. 사회에서 아이들에 처해있는 절대적인 을의 위치가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청소년 야간 근로 금지라는 겉으로만 그럴싸한 법은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금전적인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이 아니다. 이러한 법을 만드는데 돈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청소년들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금전적인 지원을 늘리는 한편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기준을 낮추는 것이 훨씬 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이와 더불어 청소년들이 정부에서 시행하는 제도는 어떠한 제도가 있는지 쉽고 간편하게 알 수 있도록 전달하는 홍보처를 두어서 지원금이 엉뚱한 사람에게 흘러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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