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 오(Hawaii Five-O)’에서는 주인공이 동료를 구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를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태극기가 크게 걸린 허름한 술집의 주인은 생 뱀의 피를 뽑아 막걸리에 섞어 주인공에게 건넨다. 술집 주변의 모습은 흡사 베트남의 밀림을 방불케 한다. 최첨단 IT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현재 모습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 속 모습에 한국인들은 화도 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하와이 파이브 오(Hawaii Five-O)’에 등장하는 허름한 술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하면 ‘북한’, ‘김정은’, ‘전쟁’ 등을 떠올린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2013년 유럽인들 522명을 대상으로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 조사한 결과 1위가 삼성, 2위가 북한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다이나믹 코리아, ‘IT강국 코리아’라고 홍보해도 오랜 시간 뿌리박힌 한국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서울 촬영은 환영할 일이다. 전작 ‘어벤져스’는 15억불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며 역대 박스오피스 3위의 흥행 실적을 올린 바 있다. 당연히 후속작에 대한 기대도 엄청나다. ‘어벤져스2’에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는 서울을 무대로 하는 장면이 20분이나 될 것이라고 한다. 영화 전체 러닝타임을 90분이라고 했을 때, 5분의 1이나 되는 분량이다. ‘어벤져스2’가 전작만큼의 흥행에 성공한다면 서울의 홍보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서울 도심이 난장판되는 것이 서울 홍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영화에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8억불의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 ‘인셉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엘렌 페이지는 화창한 오후, 프랑스의 한 작은 까페에서 담소를 나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까페가 폭발하고 거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1분 남짓의 이 장면 하나로, 프랑스 거리의 그저 그런 작은 까페였던 ‘다 스투찌(Da stuzzi)’는 영화 개봉 후 프랑스의 관광명소가 됐다. 아무도 영화 속에서 CG로 폐허가 된 도심의 모습을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대한 해일이 뉴욕을 덮치는 영화 ‘투모로우’에서도 관객들은 CG로 물속에 잠긴 후의 뉴욕이 아니라, 잠기기 전 뉴욕의 거대한 빌딩숲을 현실로 인지한다.
‘생산유발효과 251억원’, ‘외국인 관광객 연간 62만 명 증가’ 등과 같은 수치를 들고 올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월드 메가 히트를 기록한 영화에 현재의 서울이 등장하느냐 마느냐다. 천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서울은 고층 빌딩과 다리, 야경을 가진 도시다. 일본 모리기념재단 도시전략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도시 국제경쟁력 종합평가(GPCI)에서도 서울은 당당히 2년 연속 6위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영화 속 파괴되는 서울의 모습 때문에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하는 것은 지금 서울의 모습에 자신이 없는 것인가. 게다가 제작비의 30%를 지원해주는 만큼, 멋지게 서울의 모습을 그려주기로 이미 제작진과 협의를 했다고 서울시가 밝힌 바 있다.
물론 촬영이 이뤄지는 2주 동안 서울 시내 곳곳이 통제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이 2주 동안의 불편함으로 반세기 동안 외국인들의 뇌리에 박힌 낙후된 한국의 이미지가 개선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Da stuzzi'는 1분, ‘서울’은 20분이다. ‘어벤져스2’가 흥행에 성공해서 서울이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아이언맨’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로 세계인의 기억에 남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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