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 길을 잃은 지 오래다.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은 뿌리가 깊어, 사교육이 무섭게 성장해와 지금은 그 규모가 하늘을 찌른다.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2007년 이미 20조를 넘어서 2013년에는 22조에 달했고,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비율은 2007년 77%에 달해 지금도 거의 줄지 않고 있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정규 교과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을 먼저 배우는 ‘선행학습’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초등학생 84.1%, 중학생 87%, 고등학생 89.5%가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선행학습의 결과는 어떠한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 내용이 사교육에서 배운 내용의 복습이므로, 흥미가 당연히 떨어진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는 경쟁적으로 정규 교육 과정상의 진도보다도 앞서서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한 쪽이 선행 교육을 하면 다른 한 쪽도 그에 뒤지지 않으려고 선행 교육을 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그에 뒤지지 않으려 하는 ‘악마의 순환 고리’를 낳고 만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선행학습이 우리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정규 교육 과정은 성장기인 학생들의 정상적인 지적 발달 수준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선행학습은 여러가지 문제를 낳는다. 먼저 단시간에 과도한 양을 학습해야 하므로 기초를 착실히 학습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입식으로 진도만 가까스로 따라가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차후에 상위 개념을 학습하는 데에도 문제가 될 뿐 아니라 학생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성장기 학생의 뇌 발달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실제로 한국뇌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도한 선행학습은 과잉학습장애증후군 등의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둘째로 학교에서 선행 교육을 진행할 경우 소수 최상위권 학생들을 제외한 많은 학생들이 학업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본인의 학업 수준에 맞지 않는 빠른 진도로 인해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공교육은 헌법 제31조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해야 하지만, 선행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공교육이 지켜야 할 의무를 방기하게 된다. 셋째로, 선행학습이 실은 학업 성취의 측면에서 전혀 필요성이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에 따르면 상위 30% 학생의 국어 성적을 선행학습군과 대조군을 두어 비교해보았을 때 선행학습군의 성적이 대조군보다 떨어졌으며,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 격차는 더욱 컸다고 한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의식, 흥미와도 같은 것인데 선행학습을 하게 될수록 이러한 부분을 놓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2012년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학업 성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습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84%에 달했으며, 선행학습을 거의 하지 않고 복습 위주로 입시 준비를 했다는 응답 비율이 전체의 37%에 달해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선행학습은 현실적으로 실효도 적으면서 학생들에게 심각한 피해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선행학습이 이토록 오래 학생들을 옥죄고 있는 것인가? 이는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학부모들의 근거 없는 불안 심리와 선행 학습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 체계에 원인이 있다. 학교에서는 사교육과의 경쟁적 선행 교육이 일어나고, 대학 입시에서는 고교 교과과정을 뛰어 넘은 내용의 문제들이 대학별 고사 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 체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사교육에서의 선행 교육에도 규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일단 가장 먼저 국가 차원에서 체제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학별 고사에서는 고교 교과과정을 뛰어 넘은 내용의 문제가 출제되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학교에서는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 과정을 뛰어 넘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굳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와 같은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
물론, 이 두 가지 조치만으로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가 하루아침에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문제들이 있고, 이에 따른 해결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접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행학습에 대해서만큼은 학생들이 정말 무의미한 고통을 일상처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체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불안 심리’라는 인식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먼저 체제를 개선함으로써 우리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단초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논의에 첫 걸음을 내딛은 선행학습 금지법은 이 땅에서 선행학습을 몰아내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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