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법은 사교육을 유발하는 선행교육에 대한 규제를 통해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입안되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초, 중등 교육기관에서 공교육기관은 교과서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을 평가할 수 없고 방과 후 학교와 같은 정규수업시간 외에 편성된 수업에서도 선행되는 내용을 포함 할 수 없다. 초, 중 교육을 담당하는 공교육기관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대학입시 전형으로 교과서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없다. 사교육기관은 사교육을 유발하는 광고나 선전을 규제받는다.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이 법안의 최종적 목표는 사교육 시장을 축소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법안의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사교육 시장에 대한 규제보다 공교육에 대한 규제가 더 많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학교에서 치러지는 시험의 범위가 교과과정을 뛰어넘고 난이도가 어렵다보니 사교육이 성행한다는 정책입안자들의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사교육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회구조에 있다. 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경쟁사회, 학벌지상주의가 팽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위해서는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이 모두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사교육을 받는 것은 내가 지식을 조금 더 쌓아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스스로 똑똑해지려는 행위가 아니다. 남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아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함이다. 사회구조나 의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사교육은 절대로 없어질 수 없다. 또한 사교육의 직접적 주체인 학원에 대해서는 광고나 선전만 규제한다는 사실도 우습다. 직접적 광고를 하지 않아도 학부모와 학생은 입소문에 의해서 움직인다. ‘강남 돼지엄마’라는 말은 이를 잘 드러내준다. ‘강남 돼지엄마’라는 별칭은 강남의 입김 센 엄마가 수강생들을 우르르 몰고 다닌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똑똑한 대중들은 선택에 있어 더 이상 과장 광고에 휩쓸리지 않는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잘나기 위해서 필요에 의해 사교육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법안은 한계가 있다. 과연 학교 정규 수업만으로 수능을 치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학교유형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학교 정규수업에서 국어, 수학, 영어에 배정된 교과이수 시간은 일주일에 각각 3~4시간 정도이다. 과연 그 시간 안에 수능과 연계될 만큼 수준의 심화학습이 가능한지가 의문이다. 교과서를 기반으로 한 내용은 교실에 있는 많은 학생들의 수준을 아울러야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규수업 외에 편성된 방과 후 수업시간에 마저도 심화학습과 선행학습 내용을 다룰 수 없다면 오히려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들에게 손실일 수밖에 없다. 선행학습을 진행하지 않고 심화학습만 가능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심화학습과 선행학습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수학의 경우 뚜렷하게 단원이 정해져있다고 하더라도 국어나 영어는 수준을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 또한 과거와 달리 교육과정이 단절된 형태가 아닌 나선형 교육과정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심화학습의 기준을 정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교사에게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위해 심화적인 내용을 다룰 것인지, 교실의 다수의 아이들을 도태시키지 않기 위해 기본적 수준의 내용을 교수할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면 교실에서 도태되는 아이들이 발생할 것이고 후자를 선택하면 학력저하와 하향평준화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특히 지금의 교육목표와 상반된다. 현재의 교육목표는 ‘창의적 인간’이다.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기성지식의 주입일 뿐 새로운 내용은 배우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심화된 교수방법이 창의적 인간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선행학습 금지법으로는 교과서에 갇힌 인간밖에 상상할 수 없다.
또한 학생들은 개인마다 발달의 속도가 다르다. 최근 도입된 무학년제와 수준별 학습을 살펴본다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학생의 발달이란 자로 잰 듯 학년과 나이에 따라 정확히 구분될 수 없다. 또한 학생들마다 발달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수준별 수업을 통해 상위권 학생은 심화학습으로 하위권 학생은 보충학습으로 끌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영재학습의 경우에는 교과교육 외에 반드시 심화학습과 선행학습을 통해 능력을 개발시켜주어야 한다. 이렇게 개인마다 맞는 학습이 필요한데 모두 똑같은 지식의 깊이만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학습권 침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이미 깊게 박힌 사교육이라는 뿌리는 단편적인 부분만 생각하는 정책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개선과 학벌중심의 사회구조 혁파를 통한 다양성의 인정만이 그나마 사교육 시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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