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중 우울증상 보이는 환자 보호자 10명 중 8명

불 꺼진 원무 창구 앞. 소아 환자를 휠체어에 태운 30대의 보호자가 소리 죽여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엄마 옆에 앉아있는 두 살배기 아이는 엄마의 속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난감 햄버거만 만지작거린다.

 

 

아픈 환자, 더 힘든 환자 보호자

 

지난 4월 국립암센터의 ‘암환자 보호자의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전국의 암환자 및 보호자 990쌍 중 82.2%는 우울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38.1%는 불안 증상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보호자 중 17.7%가 지난 1년간 자살 충동을 느꼈고, 2.8%는 실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국립암센터가 전국 11개 병원에서 481명의 말기암환자와 가족 381명을 대상으로 보호자의 고용형태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암환자 보호자 중 63.7%가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3.9%가 간병 중 직업을 상실해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었으며 특히 보호자가 ▲고령이거나 여성인 경우 ▲가족의 월수입이 낮은 경우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 경우에 실직한 비율이 더 높았다.

 

자식보다 내가 아팠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신촌세브란스 제중관 33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4살 남자아이의 보호자 ㅂ씨는 3개월여 동안 강원도 원주의 집과 병원을 오가며 병간호를 하고 있다. ㅂ씨는 “한 번 입원을 하면 1~2주는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면만 하면서 간병을 하고 있다”며 고된 보호자 생활에 대해 전했다. 세브란스 병원은 지방에 거주하는 소아암 환아와 보호자들의 숙박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한빛사랑나눔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빛사랑나눔터는 현재 6가정이 이용하고 있으며 최대 9가정까지 수용할 수 있다.

 

살아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게 자식의 도리

 

충남 대천에 사는 40대 ㄱ씨는 신촌세브란스 암센터 2층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삼형제 중 막내로 개인사업을 하는 ㄱ씨는 교사인 큰형과 장인장모를 모시고 사는 둘째 형 대신 아버지 병간호를 도맡아 하고 있다. ㄱ씨는 “아버지와 함께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자간의 정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암센터 3층. 유아무개씨(60)는 위암과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86세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유씨는 환자 보호자의 힘든 생활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유씨는 40여 년간 병치레를 한 아버지를 보살펴 왔다. 집에 있는 유씨의 어머니도 전신마비의 중환자로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해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유씨는 “몸과 마음이 힘든 것보다 치료 기간이 길어져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부모 곁을 지키고 있는 유씨 본인도 24년 전 뇌출혈로 수술을 했다. 유씨는 “왼쪽 시력을 잃고 사지마비와 언어장애에 시달렸지만 꽃꽂이, 장구, 경기민요 등으로 극복했다”며 “힘들어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자식된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씨의 아버지는 병세가 심해져 곧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국립암센터, 환자 보호자를 위한
‘간병 반응 평가 도구’ 개발

 

국립암센터의 국가암관리사업본부 암정책지원과 박종혁 과장은 암환자 보호자들의 환자 간병에 따른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한국어판 간병 반응 평가도구(Caregiver Reaction Assessment-Korea, CRA-K)’를 개발했다. CRA-K는 총 24개의 문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는 부정적인 영역 ▲일과 방해 ▲가족의 지지부족 ▲건강 문제 ▲재정 문제와, 긍정적인 영역 ▲간병인의 자존감으로 나뉜다. 연구 결과, 여성이거나 하루 6시간 이상 간병을 하는 보호자의 경우 4개의 부정적인 영역에서 모두 양호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소득이 적을수록, 장기간 간병을 할수록 건강 문제와 재정 문제에서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박 과장은 “간병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며 “시범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을 확대 운영하는 것도 환자 보호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 덜 아프고 덜 힘들기 위해서는?

 

일본에서는 수술, 항암제ㆍ방사선 치료를 받은 암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또한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치료 이후 불확실한 경과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상담과 지침을 제공하는 ‘지역거점 암진료 제휴병원’을 350여 개소 지정해 연간 50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박 과장은 “우리나라도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건강 상담과 정보제공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픈 가족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환자 보호자들은 힘들다. 하지만 제중관 33병동과 암센터 3층의 환자 보호자들은 힘들어도 환자 앞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다. 장기간 오랜 입원을 하며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도 친구가 되듯 환자 보호자들도 서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서로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며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손성배 기자
89sungba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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