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의 대인지뢰 사용은 군사적 효용성이 없다. 오히려 북한군의 침공시 이를 격퇴하고 반격하기 위한 한미 연합군의 기동을 방해하고 민간인을 지뢰피해에 노출시킬 뿐이다”

                   - 전(前) 한미연합사령관 제임스 홀링스워스 장군이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중


대인지뢰, 우리나라에 매설돼 있다

지난 2010년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확인지뢰지대의 지뢰제거를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무려 489년이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아래 DMZ)는 물론 서울 예술의 전당이 위치한 우면산 일대, 인천 문학산, 부산 중리산 등 도시 인근 지역에도 지뢰가 매설돼 있다. 군이 파악한 미확인 지뢰지대는 200여 개소로 8천100여만㎡에 달한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정부는 ‘대인지뢰는 철저히 DMZ에만 매설돼 있으며 DMZ를 제외한 어떤 지역에도 지뢰가 매설돼있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 1996년 2월 부산 태종대 인근 중리산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이 대인지뢰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후방지역에도 지뢰가 매설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대인지뢰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 사회 단체의 관심이 증대됐다.
 

국제사회와 우리나라 ‘평화나눔회’의 대인지뢰 금지 노력


국제사회에서는 대인지뢰 제거와 사용 금지를 위해 지난 1997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1개국의 서명으로 즉각적이고 전면적으로 대인지뢰의 생산 및 사용을 금지하는 ‘대인지뢰금지협약’을 채택했다. 이는 1992년부터 대인지뢰금지 운동을 전개해온 국제대인지뢰대책회의(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 ICBL)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0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orean Campaign to Ban Landmines, KCBL)가 출범했으며 2009년 평화나눔회로 명칭을 바꿨다. 작년까지 우리대학교 루스채플관에 위치해 있던 평화나눔회는 현재 서대문역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평화나눔회는 지뢰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인지뢰피해자를 지원하는 ‘평화나눔 사진전’, ‘지뢰 피해자 월동장구 지원’, ‘한일 양국 학생이 함께 떠나는 피스투어’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뢰 피해 마을로 떠나는 피스투어


평화나눔회는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우리대학교 학생들과 와세다대, 오사카대 등 일본학생들이 참여하는 피스투어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피스투어는 지난 8월 12일부터 20일까지 8박 9일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우리대학교 삼애교회와 6ㆍ25전쟁 이후 8명의 지뢰피해자가 발생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2리에서 진행됐다. 피스투어에서 한일 양국 학생들은 ▲마을 농촌 봉사 ▲지역 초등학생 지식 멘토링 ▲열쇠전망대와 인근 포병부대 견학 ▲평화나눔회 부이사장 조재국 교수(교목실·종교학)의 강연 ▲지뢰 피해자와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스태프로 참여한 최진호(신학·10)씨는 “일본학생들과 함께 열쇠전망대에서 북한을 직접 보고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을 공유할 수 있었다”며 “한일 관계가 냉랭해진 시기에 일본 학생들과 끈끈한 교류를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와세다대 이와가키 리카(인간과학과․12)씨는 “독도나 위안부 문제로 인해 한일관계가 좋지 않지만 피스투어에 참가한 양국 학생들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며 “또한 지뢰 피해자와의 만남을 통해 전쟁의 흔적인 지뢰의 위험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뢰 피해자들의 순탄치 않은 삶


 
   
 
 
 

지난 2011년 강원도와 평화나눔회가 합동 실시한 지뢰 피해자 전수조사 결과 강원도 내 지뢰 피해자 수는 228명, 현재 생존자는 64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서쪽 DMZ를 관할하고 있는 경기도에서는 아직 전수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전국의 피해 현황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피스투어의 지뢰 피해자와의 만남에 초청된 주민들은 모두 4명이었다. 한창 일할 시기인 26세 때 사고를 당한 안동오(72)씨는 “46년 전 논에 일을 나가 개울물에 내려갔다가 지뢰를 밟아 발가락 4개와 한쪽 다리를 잃었다”며 “군부대 군의관들이 주사를 놔주고 염증을 닦아주기는 했지만 정부에서 치료비를 받은 것은 지금까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일복씨도 지뢰를 밟아 대퇴부 아래 다리를 잃었다. 김씨는 “다 늙어 죽고 살아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며 “고엽제 피해자는 보상을 해주면서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지뢰 피해자는 보상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철원군 대위리에 거주하는 김정호(60)씨는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1시간여를 달려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고를 당한 김씨는 “어린 시절 호기심에 만진 쇠붙이가 갑자기 터져 왼쪽 손과 오른쪽 눈을 잃고 한쪽 다리도 거의 절단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다리는 당시 잘못 봉합됐으나 평화나눔회와 강원대병원, 삼성사회봉사단의 지원으로 7번의 재수술을 했고 현재 많이 회복된 상태다.

지난 1968년 지뢰 사고를 당해 힘겨운 삶을 살다 2012년 사망한 고(故) 이상수씨의 유가족인 문문순씨는 “남편의 사고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느라 25년간 청량리 역전 청소를 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쉬는 날에도 남편의 치료를 위해 기차를 타고 다녔다”며 힘든 시절을 회상했다. 문씨에게는 남편이 사망한 후 의지할 두 아들이 있었으나 큰 아들은 명절을 쇠러 고향에 오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작은 아들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씨는 “평화나눔회 피스투어를 온 학생들을 보니 가끔 찾아오는 큰손자 생각이 많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했으나



지난 2000년 12월 국가배상법이 바뀌기 이전까지 지뢰 피해자는 해당 관할 부대에 지뢰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부대장의 승인을 얻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국가배상법이 바뀐 이후에는 국가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개선됐지만 사고 발생 3년 이내에 소송을 걸어야 하는 시효기간 제한과 피해자가 사고를 입증해야 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오래 전 지뢰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조재국 교수는 피스투어 강연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민통선 내 지역이나 인근에 사는 시골 주민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보상체계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과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김영호 의원 등 국회의원 31명은 지난 1월 25일 ‘지뢰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6ㆍ25전쟁 정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 이후부터 법 시행일 3년 전까지의 지뢰사고로 인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사람 또는 그 유족에 대해 위로금 및 의료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평화나눔회 박수현 사무국장은 “이 법안은 6월 공청회를 거쳐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현재 국방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라고 밝혔다.


지뢰제거업법, 합리적인 해결책?


한편, 국방부는 지난 11월 11일 「지뢰제거업법 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뢰제거업법의 취지는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의 지뢰지대를 군이 전담해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인이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지뢰 제거를 원할 경우 민간기업이나 업자가 지뢰 제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때 지뢰 제거는 국방부장관이 실시하는 지뢰제거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 한해 허용된다. 녹색평화연합 한국지뢰연구소 김기호 소장은 “2004년까지는 원래 민간에도 지뢰 제거가 허용됐지만 2004년 2월에 군에서 갑자기 민간의 지뢰 제거를 금지해서 민간인이 지뢰 제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국방부에서 추진하는 지뢰제거업법은 지뢰제거를 하나의 영리사업화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뢰제거업법의 입법추진배경에는 ‘지뢰는 국가가 군사상 필요에 따라 설치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국가가 지뢰를 제거할 의무가 있으나 군사상 필요성이 소멸된 지뢰지대를 군이 전담해 일시에 제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만일 국가만이 지뢰를 제거할 수 있고 민간인은 지뢰를 제거할 수 없도록 금지한다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산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까지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나와 있다. 김씨는 “민간인이 개인 소유한 토지의 지뢰를 제거하는 데 자부담으로 제거하도록 해 국가가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닌가”라며 “지뢰 제거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덧붙여 김씨는 “만일 국가가 예산을 편성해 지뢰제거민간업체를 운영한다면 지뢰제거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업체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나눔회 박서현 사무국장은 “군에서 지뢰 제거를 하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과 인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민간인이 하면 지뢰를 제거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국방부에서 예산을 따로 책정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 비용을 전가해 상업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이나 업자가 지뢰 제거에 많이 참여할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지뢰제거,  군비축소가 아니라 인도적인 문제

 

지난 7월, 중국과 불과 2km 떨어져 있는 대만의 금문도와 마조도의 지뢰가 완전 제거됐다. 금문도와 마조도는 대만의 대중국 전초기지로 1958년 중국과 44일간이나 포격전을 벌인 곳으로 1992년 관광지로 개발됐으나 여전히 12만 8천여 발의 지뢰를 품고 있었다. 이에 대만 국방부는 1997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약 7년간 국내외의 민간단체와 함께 섬 내의 모든 지뢰를 제거해 금문도와 마조도를 ‘지뢰 없는 평화의 섬’으로 탈바꿈시켰다. 민관이 힘을 합쳐 지뢰 완전 제거를 이뤄낸 금문도와 마조도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시민단체와 군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 이후에도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수족과 목숨을 앗아간 대인지뢰. 대인지뢰 제거는 더 이상 군비 축소의 일환으로 방치돼서는 안되는 인도적인 문제다.
 

글, 사진 손성배 기자
89sungba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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