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안도현 시인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사건에서 7명의 배심원은 지난 10월 28일 전원일치로 무죄를 평결하였다. 이에 전주지방법원의 담당재판부는 일부 평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판결선고를 10일가량 연기하였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일부의원과 일부 언론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서 제외해야 한다거나 지역감정에 기반한 감성재판이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많았다. 지난 5년간 법관과 배심원의 평결이 불일치한 경우는 7.5% 정도에 불과하며, 국민참여재판이 국민의 눈높이와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므로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11월 7일 허위사실공표죄는 무죄이지만, 후보자비방죄는 유죄를 인정하여 벌금 100만 원의 선고를 유예하였다. 그러한 최근의 논란에는 약간 거리를 두고 국민참여재판이 무엇인지, 왜 도입되었는지에 대하여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법전문가인 법관들의 재판이 국민의 상식이나 법감정과 달라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와 상식을 반영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미국 법정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고, OECD국가의 대부분이 다양한 형태로 시행 중인 선진적인 재판제도이다. 핵심은 이렇다. 해당 관할구역에 거주하는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하여 질문 및 선정절차를 통과한 사람이 배심원이 되어 형사사건에서 유무죄와 양형에 관한 의견을 판사에게 권고하면, 판사는 그러한 배심원단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 의견을 참고해서 판단한다. 아직은 시범단계여서 배심원의 의견은 권고적이고 법관은 기속되지 않는다. 올해 2013년 9월까지 1091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는데, 그중 유무죄에 대하여 배심원의 평결과 판사의 결정이 일치한 것은 92.5%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과연 국민참여재판이 완벽한 제도인가, 완전히 공정한 재판제도인가 하는 점이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어디있을까. 국민참여재판도 단점이 있고, 불공정의 우려는 있다. 오히려 핵심은 예전에 판사가 단독으로 재판하던 것에 비하면 공정하고 국민의 눈높이를 반영하며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국민참여재판은 법전문가인 법관과 엄정히 선정된 배심원이 협력하여 재판하는 제도이다. 이를 통하여 전관예우, 법조비리,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는 현저히 감소할 수 있다. 배심원은 변호사의 전관여부나 뇌물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한 법관 자신도 학연, 지연, 가치관 등의 영향을 받는다. 배심원은 이를 중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작은 권력분립”이라고도 한다.
어떤 제도를 평가할 때에는 완벽하지 않다고 이상적이지 않다고 폄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순수한 이상주의나 이념주의는 현실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멀리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현실적 이상주의’의 미덕을 간직해야 한다.
유명한 법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정의는 실현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실현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it must be seen to be done.) 특정지역에서, 특정법관이 재판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불공정했다고 단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금물이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살 수 있다면, 제도적 보완을 검토해도 좋다고 본다. 보완의 방안은 무엇일까. 정치적 사건은 대부분 국민의 기본권, 표현의 자유에 관계된다. 이러한 중차대한 사건의 경우, 종래의 법관재판으로 회귀하자는 주장은 너무 성급해 보인다. ‘현실적 이상주의’의 관점에서, 소의 뿔은 고치되 소도 살리는 지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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