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약탈문화재 반환운동의 현황을 알아보다

지난 9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반가운 선물이 찾아왔다. 60여 년 동안 고향을 떠나있던 우리 문화재 ‘문정왕후어보*’가 돌아온 것이다. 문정왕후어보는 조선의 문정왕후가 대왕대비로 국정을 운영하던 시절에 쓰던 금동제 도장으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도난당해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아래 LACMA)에 소장돼있었다.

 

가슴 아픈 역사가 낳은 약탈문화재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약탈된 문화재가 많은 편에 속한다. 약탈문화재가 생기는 경로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전쟁에 의한 약탈 ▲도굴에 의한 약탈 ▲식민지에 의한 약탈 ▲국가가 분리되며 문화재가 타국에 남게 되는 경우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약탈문화재가 많은데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의 통계에 의하면 2013년 1월 기준 해외소재 문화재는 15만 2천915점이다. 하지만 이 중 공정한 거래에 의해 외국인들이 소지하게 된 문화재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로 문제 삼는 것은 해외소재 문화재 중 이들을 제외한 약탈문화재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19세기 전쟁 등에 의한 문화재 약탈은 빈번했지만 문화재 반환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문화재 약탈의 개념은 1954년 당시 체결된 ‘전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어 ‘문화재 불법 반출입 금지 협약’이 1970년에 체결돼 1972년에 발효됐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약탈된 문화재들은 그 시기가 1972년 이전이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환에 어려움이 있었다.

 

역사는 바꾸지 못해도
문화재는 돌아올 수 있다

 

오늘날 문화재 반환을 위한 움직임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월 7일에는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 ‘조선대원수 투구 및 갑옷반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문정왕후어보 반환운동’을 위한 100인 위원회 중 한명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는 가수 아웃사이더는 지난 8월 문정왕후어보 반환운동에 동참하는 취지의 자선 콘서트를 열고 콘서트의 수익금 전액을 민간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에 기부했다. 아웃사이더는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이라는 위치에서 기부와 기여를 통해 문화재 반환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한류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커지고 있다”며 “정체성 있는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 반환은 대부분 약탈문화재 반환운동을 하고 있는 여러 민간단체에 의해 이뤄진다. 문정왕후어보 반환에도 ‘문화재제자리찾기’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LACMA에 문정왕후어보가 보관돼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대표 혜문스님이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메릴랜드 국가기록보존소에서 ‘미국의 한국 문화재 약탈 현황’이 포함돼 있는 ‘아델리아홀레코드’가 발견됐다. ‘아델리아홀레코드’는 미군이 문정왕후어보를 약탈해갔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였다. 이후 3년 정도 서신을 보내고 뉴욕 교민들과 어보반환운동을 진행한 결과 LACMA 수석부관장에게 어보를 반환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혜문스님은 “문화재 반환이 가능한 것은 반출 방법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라며 “사실관계 증명이 반환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간단체가 실질적인 반환운동을 진행한다면 문화재청은 약탈문화재 관련 조사를 하거나 여론조성차원에서 민간단체에 국가 예산을 지원해주기도 하며 해외 학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력을 이끄는 일을 한다. 약탈문화재 관련 조사로는 ▲약탈문화재가 있는 장소 등의 현황을 파악하는 실태조사 ▲어떠한 경위로 반출됐는지 알아보는 반출경위조사 ▲옥션하우스나 경매사에서 어떻게 거래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유통조사 등이 있다. 문화재청의 김경연 담당관은 “민간단체가 실질적인 환수를 이끌어낸다면 정부는 문화재가 환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제자리를 찾는 중

 

지금까지 반환된 약탈문화재 중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라 하면 조선왕조실록 반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의 조선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책으로 반환된 약탈문화재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강점기 때 테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에 의해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됐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오대산 사고본은 2006년 초 도쿄대 도서관 귀중서고에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후 서울대 60주년과 규장각 창립 230주년을 기념해 도쿄대가 서울대에 기증함으로써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렇게 우리나라로 돌아온 오대산 사고본은 소유 및 관리권과 관련해 논란에 휩싸여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문화재청은 전문가들에 의해 관리를 받으며 연구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오대산 사고본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오대산이 위치해 있는 평창군은 국립고궁박물관의 이관 이후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헌장에 따라 사고본이 원래 있었던 오대산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란이 있는 것은 서울대가 국립대에서 국립대법인으로 전환함에 따라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어디까지를 국가 소유로 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오대산 사고본이 있어야 할 곳은 논쟁의 중심에 있다.


약탈문화재 반환의 역사는 이제 시작단계고 실제로 성공한 예는 드물다. 하지만 문화재를 찾아 우리 품으로 가져오는 것은 선조의 얼을 찾아오는 것인 만큼 우리는 책임감을 갖고 우리 문화재를 환수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세계 곳곳을 돌고 도는 우리의 보물들이 하루빨리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어보 :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

**오대산 사고본 : 임진왜란으로 실록이 불타버린 후 태백산, 마리산 등지와 함께 오대산에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했다.

 

 

최지연 기자
geechoi@yonsei.ac.kr

자료사진 MBC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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