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이 혈액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행위라면 조혈모세포 이식은 스스로 건강한 혈액 세포를 만들지 못하는 백혈병과 같은 혈액 관련 질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치료다. 조혈모세포는 전체 혈액 중 약 1%에 불과하지만 혈액을 구성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는 신비한 세포다.

 

조혈모세포 기증, 운명적인 일치 확률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총 3천492명의 환자가 타인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환자와 기증자 간의 조직적합성항원(Human Leukocyte Antigen, 아래 HLA)이 일치해야 가능한데 HLA의 일치 여부는 이식 후 신체 거부반응과 생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HLA는 부모로부터 반반씩 유전되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일치할 확률이 타인과 일치할 확률보다 오히려 적다. 그러나 형제·자매간에는 일치할 확률이 높아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의 경우 형제·자매의 HLA 검사를 우선으로 한다. 형제·자매간의 HLA가 일치하지 않거나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에는 한국 조혈모세포은행과 가톨릭 조혈모세포은행의 기증희망자 중에서 환자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희망자를 찾는다.

지난 2013년 6월까지 누적된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는 총 25만 2천77명이다. 매년 약 2만 명씩 기증희망자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9천772명이 기증희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재 약 2천200여 명의 환자가 HLA가 일치하는 기증희망자가 없어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김진석 교수(의과대·혈액내과)는 “미국은 기존 기증희망자 수가 약 900만 명이고 연간 신규 기증희망자 수도 65만 명씩 증가하는 등 기증자의 규모 자체가 다르다”며 “우리나라도 기증자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혈연관계에 있는 환자와 기증자 간의 HLA가 일치할 확률은 약 2만분의 1로 매우 낮다. 김 교수는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규모를 점차 늘려야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기증자의 HLA 검사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있어 무턱대고 늘릴 수 없는 현실”이라며 “2~3년 전부터는 기증희망자와 일치하는 HLA가 없는 환자는 부모나 자식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도 하는데 성적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밝혔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아프다? 위험하다?

 

조혈모세포는 골수와 말초혈액에서 채취할 수 있다. 조혈모세포가 가장 많이 있는 골수는 엉덩이뼈에서 채취한다. 엉덩이뼈에서 골수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전신마취가 필요하고 채취 시 출혈이 있어, 이를 보충하기 위해 2~3주 전부터 자가헌혈로 혈액을 모아뒀다가 조혈모세포 채취 후 자가수혈을 한다. 조혈모세포가 거의 없는 말초혈액에서 채취할 경우 이식 나흘 전부터 촉진제를 맞아 말초혈액으로 조혈모세포를 이동시킨 후 채취한다. 말초혈액을 통한 조혈모세포 채취과정은 촉진제를 맞는 것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지만 헌혈과 비슷하다. 김 교수는 “골수채취와 말초혈액 채취 모두 장·단점이 있다”며 “가까운 일본만 해도 골수에서 채취해 이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골수채취가 전신마취, 자가헌혈 등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어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촉진제를 맞더라도 말초혈액으로 채취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 조혈모세포은행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기증을 희망해도 HLA가 일치하는 환자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기증희망자의 변심, 가족의 반대, 연락 부재 등의 요인으로 인해 기증을 거부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그 결과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약 60%”라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젊고 건강한 이들의 개인적인 책임감을 고취하는 것만으로 기증을 독려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기증자들을 위해 회사나 직장, 학교 등 사회적인 합의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한 우리에게는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지난 2012년에 기증희망자로 등록한 양혜열(정경경제·08)씨는 “지구 반대편의 굶어 죽는 아이들의 아픔에 둔감한 것처럼 혈액 관련 질환자가 주변에 없어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친구의 가족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증을 희망했다”며 “나와 HLA가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기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선 환자들에게 조혈모세포 이식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장기와 달리 혈액을 만들어내는 데 문제가 없다면 계속 생성되는 조혈모세포. 건강한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일지 모르는 한 방울의 피가 혈액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생명의 씨앗이다.


*생착: 조직이 다른 조직에 붙어서 기능을 하는 것. 조혈모세포 생착은 이식 후 혈액을 생산하는 기능을 온전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손성배 기자
89sungbae@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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