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얼을 담고 있는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작자와 제작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문자다. 이러한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한글날의 기원은 조선어 연구회가 1926년 11월 4일에 기념한 ‘가갸날’이다. 가갸날은 「세종실록」에 훈민정음이 반포됐다고 기록된 음력 9월 29일을 기준으로 제정됐다. 이후 1928년 한글학자 주시경에 의해 ‘한글’이라는 명칭이 정착된 후 가갸날 또한 ‘한글날’로 바뀌었고 이 명칭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음력으로 한글날을 기념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에 1934년부터 양력 10월 28일을 한글날로 지정했다.

그러던 중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훈민정음 반포일이 양력 10월 9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광복 이전까지는 10월 9일에 한글날을 기념하지 못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해 일제의 탄압이 심해졌을 뿐더러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국내 한글연구단체의 활동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1945년 독립 이후 매년 10월 9일에 한글날 기념행사가 열렸으며 1970년 6월 15일에는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이후 한글날 행사를 정부에서 주관하는 등 한글날의 의미는 더욱 커졌다.

그러던 중, 지난 1991년 정부는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결정은 한글 단체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으며 이들 단체는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5년, 한글날은 국경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국경일이 곧 공휴일을 의미하지는 않는 만큼 한글날의 의미를 제대로 기리기 위해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다. 이에 지난 2012년 11월,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글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하수 교수(문과대·사회언어학)는 “지금까지 한글에 대해 지나친 심정적 찬양만을 해왔던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한글이 민족의 상징이 됐던 만큼 한글에 대한 진지한 성찰 대신 맹목적이고 진부한 신비화가 일반인의 인식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글관은 근대의 민족개념이 붕괴돼가는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김 교수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한글에 대한 재평가와 새로운 의미부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글날은 ‘평소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한글의 의미를 새로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날’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백범 김구는 말했다. 무엇이 아름다운 나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권력이 아닌 문화를 기념하는 날이 국가에서 지정하는 공휴일이 됐다는 사실은 백범이 꿈꿨던 아름다운 나라의 이상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567돌을 맞은 한글을 자축하며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김범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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