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여 연세인 중 가장 튈 수 있는 방법은?

 

개강 첫 주, 방학 내 한산했던 백양로가 오랜만에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새로운 부원을 모집하려는 열기가 가득한 동아리 박람회도 한창이었던 그 때, 백양로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자, 아니 여인네가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한 눈에 받았다. 

한복,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줘!
 
유독 이번 여름 방학에는 SNS를 통해 지인들의 해외여행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한복을 입고 유럽 여행을 다녀온 어느 블로거의 사진이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배경이었지만 그 사진에 독특한 매력을 더해준 것은 여행에서 그녀가 입은 한복. 문득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나 자신을 바꿔라’는 말이 떠오르며 작은 변화로 나를 바꿀 때, 옷이 그 한가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꿔왔던 대학생활이 어느덧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처럼 느껴질 때쯤, 나는 이 생활을 다시금 특별하게 만들고자 그녀를 벤치마킹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보자!” 
 
옷장 속에 있는 한복을 오랜만에 꺼냈다. 명절도 아닌 개강 첫 날에 한복이라니.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입기 시작했는데, 치마와 저고리는 금세 입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옷고름 매기에 있었다. 중학교 가정시간에 분명 배웠던 것 같은데, 인터넷 동영상을 몇 번을 돌려보고 나서야 겨우 옷고름을 맬 수 있었다. 시작이 조금 고되긴 했지만, 입고 나니 내가 봐도 예뻤다. 진한 핑크색의 치마, 연분홍의 저고리를 입으니 쌀쌀한 가을 날씨 속에서 혼자 봄처녀가 된 기분이랄까.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한복을 입었다고 꽃신에 비단 가방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복만 입었을 뿐, 나는 여전히 꽃다운 22살 여대생이기 때문. ‘잇 아이템(it item)’인 브랜드가죽가방과 8cm킬힐을 장착한 채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정문으로 향했다.
무심코 지나가다가 흠칫 놀라 멈추는 사람들, 옆 사람과 소곤소곤 대며(그러나 흥분한 그들의 목소리의 데시벨은 상당했던) “대박, 저 여자 한복 입었어!”라며 말하는 사람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1년 반을 학교에 다니면서 결코 받아보지 못한, 아니 졸업할 때까지도 받지 못할 주목을 한 번에 받은 날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옷은 몸에 익숙해졌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우쳐주고 있었다. “한복 예뻐요~”,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라는 사람들의 말에 연예인이 된 듯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더불어 개강과 함께 백양로를 따라 펼쳐진 동아리부스들 덕분에, 예상보다 몇 배 더 많은 시선들을 받아야 했다. 즐거울 것만 같았던 오늘, 아직 오후 3시 반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창피함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얼굴만 아는’ 사람들한테서 느낄 수 있었다. 첫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들어서니 200명의 시선이 한 번에 내게로 쏠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예상했던 반응이 나온다. 웃음과 함께 간간히 들리는 ‘쟤 뭐야?’ 라는 쑥덕거림, 그리고 사진촬영까지!(몰래 찍으셨겠지만, 다 보였어요) 친한 친구들은 빵 터지며 이유를 물었고, 등굣길에 당당히 준비한 “한복이 참 예쁘잖아!”라는 말 대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기사 때문에...어쩔 수 없었어”라고 변명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이야 그렇다 쳐도, 얼굴만 아는 어색한 선배들에게는 나의 이 모습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마음으로야 일일이 가서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라고 해명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터. 손에 커피까지 들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내 모습을 ‘취재’때문이라 생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리라. 소심한 기자는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했다. 
 
진짜 불편한 게 뭔지 알아?
 
명절 때 잠깐 입어본 것이 고작인 한복을 입고 하루 종일 생활하려니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두툼한 속치마와 겉치마, 저고리까지 걸치니 너무 더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에 땀이 고였지만, 바람이 통할 구멍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참을 수밖에. 게다가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다. 8cm 킬힐을 신었음에도 치마가 길어 땅에 끌릴 정도라, 결혼식 때 신부가 치마를 살짝 잡고 걸어가듯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평지에서도 이 정도니, 언덕과 계단은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러다 배에서 신호라도 오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된다. 길고, 크고, 무거운, 한마디로 ‘거대한’ 치마를 양손으로 힘겹게 접어올려 변기에 조금이라도 닿지 않게 해야 한다. 힘들게 앉은 변기에서 나는 로뎅 마냥 생각에 빠졌다. ‘과거 조선시대 여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문득, 옛날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이 적었던 것은 옷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복을 입고 있으니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으니 말이다!) 화장실에서 10분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최대한 덜 먹고 참고, 또 참았다. 아, 그리고 자꾸 풀리는 옷고름 때문에 길을 가다 멈춰 옷매무새를 다듬는 일을 열 번 정도 반복한 것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사실 이것들 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다.여느 학생들처럼 동아리 부스를 돌아다녀도 내겐 동아리 설명이 아닌 “왜 이러고 왔어요?” “학생 맞아요?”라는 질문이 돌아왔고, 식당이나 화장실에서는 민망할 정도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느껴졌다. 특히 도서관 입구에서는 경비에게 따로 신분 확인까지 받아야했다. ‘특별’하기를 기대했지만, 한복을 입은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특이’한 사람이라는 눈빛이었다. 어느덧 특별한 하루를 만들자는 거창한 이유는 머릿속에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평범한 사진의 배경처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만 간절해졌다. 
 
희극인의 삶은 비극이다
 
도서관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한복투어(?)를 마친 뒤 화장실로 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면서 나는 찰리 채플린을 떠올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말하며 인생의 고달픔을 토로했던 희극인의 마음이 절실하게 공감됐기 때문. 한복을 입고 여행 한 블로거가 비록 다른 사람에게 특별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 안에 힘든 과정이 있었음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타인에겐 특별해 보이는 것들이,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눈길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그 눈길을 두려워하는 내 모습에서 내면의 이중성 또한 발견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탄산수 같은 이날의 경험은 먼 훗날 나의 기억 속에 톡톡 튀는 청춘 에피소드로 미화되어 있지 않을까. 
 
 
   
 
 
   
   
     
 

 

오도영기자

doyoungs9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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