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개관한 ‘하자센터’는 우리대학교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청소년 진로활동센터로, 공식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다. 청소년에게 직업과 취업에 관한 정보만을 제시할 것 같은 공식명칭을 가졌으면서도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물씬 풍기는 ‘하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하자센터의 ‘하자’는 흠과 결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업그레이드 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하자’에서 가져온 말이다. 급변하는 사회에 돌봄과 소통을 통해 자율과 공생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하자센터. 남보다 앞서기 위해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갈구하는 해답을 갖고 있는 하자센터를 찾았다.


크리킨디의 꾸준한 노력이 숲을 살린다

숲이 타고 있었다. 동물들은 앞다퉈 도망을 갔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벌새 ‘크리킨디’는 홀로 작은 주둥이로 물고 온 한 방울의 물로 불을 끄느라 분주했다. 다른 동물들의 비아냥거림에도 크리킨디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라며 숲을 지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다.

‘우공이산’.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사자성어다. 90세가 넘은 우공이 마을을 가로막은 태형산과 왕옥산의 흙과 돌을 나르며 “나는 늙고 죽겠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자자손손 산을 옮긴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고 말하자 옥황상제가 우공의 정성에 감동해 두 산을 옮겼다는 일화에서 유래됐다.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하자센터에는 젊은 우공들이 있다. 우공이 스스로 산을 옮기지는 못했지만 옥황상제를 감동시켜 산을 옮긴 것처럼 그들은 모두가 외면한 채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고 행동한다. 그들이 바로 ‘우공’이고 ‘크리킨디’다.
현대인들은 사회적인 규칙과 직책의 굴레 안에서 행동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하지만 하자센터에는 이와 같은 규정하는 규칙이 없다. 다만 지켜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존재할 뿐이다. 다음은 하자센터에서 지켜야 하는 7가지 약속이다.

1.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
2. 나이차별, 성차별, 학력차별, 지역차별 안 한다.
3. 어떤 종류의 폭력도 행사하지 않을 거다.
4. 내 뒤치다꺼리는 내가 할 거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다.
5. 정보 때문에 치사해지지 않을 거다.
   정보와 자원은 공유한다.
6. 배려와 친절, 입장 바꿔 생각할 거다.
7. 약속은 지킬 거다. 못 지킬 약속은 안 할 거다.

하자센터에는 ‘선생님과 학생’ 대신에 ‘판돌과 죽돌’이라는 호칭을 쓴다. 판돌은 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을 의미하며 하자센터의 스태프들 모두가 판돌이다. 하자센터에서 죽치고 산다는 뜻의 죽돌은 판돌의 곁에서 일을 배우고 학습하는 청소년들이다. 판돌과 죽돌은 스태프와 학생의 역할의 벽을 참신한 호칭으로 깨고 단지 하자마을 주민으로 산다. 나이, 성별, 학력의 틀을 깬 ‘판돌과 죽돌’들은 하자센터에서 서로 존중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하고 있었다.

 

하자 학교에서 하자!
 

하자센터는 일과 학습, 자율과 존중, 공유와 협력의 운영원리에 입각해 청소년 교육에 집중한다. 현재 청소년 교육의 일환으로 센터가 운영하는 학교는 ▲작업장학교 ▲로드스꼴라 ▲영셰프 스쿨 ▲집밖에서유유자적 ▲연금술사 프로젝트로 모두 5개다. 가치관과 지향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5개 학교는 하자네트워크학교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돼 청소년들이 건강한 삶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고민하며 성장한다.
지난 2001년 개교한 작업장학교는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창의적인 상호 성장을 추구한다. 대안학교를 다니다 2011년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 온 김재욱(20)씨는 “작업장학교에서는 대안학교에서 그저 배우는 데 그치는 감수성 위주의 교육과 공동체 생활을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하자센터 앞마당에서는 작업장학교 학생들의 1평짜리 땅콩집 짓기가 한창이었다. 입시를 위해 책상에만 앉아있는 일반 학생들과 달리 함께 생각하고 연습하며 작은 집을 짓는 작업장학교 학생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하자센터에서 작업장학교의 청소년들은 ‘고래’로 비유됐다. 하자센터 학교운영팀 홍성은 팀장은 “고래가 소통하는 소리는 인간의 가청범위 밖에 있어서 사람이 들을 수 없다”며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사회가 안 듣거나 못 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청소년을 고래에 비유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숲을 지킬 줄 아는 ‘크리킨디’가 작업장학교의 상징이다. 불타는 숲속에서 개인의 행복보다 주위를 둘러보고 미약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며 행동한 크리킨디. 현대사회 속 작업장학교의 ‘판돌과 죽돌’도 불타는 숲을 지킨 작은 벌새처럼 행동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길과 요리, 음악, 창업 그리고 지속가능한 사회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소통한다는 뜻의 ‘로드스꼴라’에서는 젊은이들이 여행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의 여행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를 양성한다. 로드스꼴라 김현아 교장은 “학생들은 인문학자와의 만남과 여행을 통해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다”며 “교육에 참여하는 시인, 소설가 등의 인문학자들도 건강하고 생산적인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생을 요리하는 청소년 요리사를 키우는 ‘영셰프 스쿨’은 요리를 통해 자립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요리대안학교’다. 영셰프 스쿨의 학생들은 하자센터 1층 구내에 위치한 식당에서 하자마을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진다. 하자센터 주민들의 젊고 활기찬 에너지는 말끔하게 요리사 복장을 착용하고 구성원들의 밥상을 책임지는 그들의 손에서 나오고 있다.
‘집밖에서유유자적’ 프로젝트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는 ‘무중력 청소년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획기적인 시도를 한다. 프로젝트는 일본어로 히키코모리, 우리말로 하면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악기를 한 대씩 대여해주는 것부터 시작됐다. 사회와 벽을 쌓은 이들이 음악과 악기 연주를 매개로 벽을 허물고 함께 연주하며 사회성을 찾는 프로젝트가 바로 ‘집밖에서유유자적’이다. 홍 팀장은 “2년 동안 집 밖을 안 나왔던 청소년이 이후에 인턴활동을 하면서 안 나오는 친구들을 데리러 가기도 했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그들을 인정해줬던 것이 그들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연금술사 프로젝트’는 사회적인 기반이 없는 보육시설의 청년과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성장 체험의 장을 마련한다. 지난 2011년 연금술사 프로젝트에서 도시락 전문점 ‘소풍가는 고양이’를 열었다. 이는 청년들에게 ‘공부머리’가 아닌 ‘일머리’를 기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프로젝트의 결과다. 청소년과 청년의 창업을 돕는 연금술사 프로젝트. ‘소풍가는 고양이’에 이어 신촌에 컵케이크 전문점 ‘달콤한 코끼리’가 문을 열면서 현대사회의 삶과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사는 방식을 구체화했다.
하자센터 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사과대ㆍ문화인류학)는 “하자센터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벌일 수 있는 공간”이라며 “젊은이들이 모여 중요한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희망이 자란다.

 

하자 마을에서 사회적 기업 하자!
 

하자센터의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은 의도치 않게 시작됐다. 지난 1999년, 설립 당시의 청소년들이 2000년대 중반에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됐다. 하자센터에서 사회적 공유와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배운 그들은 이를 공익을 위해 활용하고 싶어졌다. 이에 하자센터에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부화한 사회적 기업은 폐자재를 활용한 공연과 공공디자인 사업을 하는 ‘노리단’, 청소년과 다문화 이주여성이 중심이 돼 좋은 재료로 바른 먹거리를 요리하는 ‘오가니제이션 요리’다. 이외에도 보고 즐기는 관광으로 변질된 여행을 기획하는 ‘트래블러스 맵’, 국내 최초 친환경 결혼 예복을 만든 ‘대지를 위한 바느질’, 취약계층 청소년 대상 음악 교육과 재능 기부 나눔 콘서트를 하는 ‘에듀케스트라’ 등 9개의 사회적 기업이 하자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홍 팀장 말에 따르면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피로연 ▲트래블러스 맵의 신혼여행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결혼 예복과 꽃장식 ▲에듀케스트라의 축가 연주 등이 모여 웨딩 패키지가 되기도 했다. 친환경적이고 사회지향적인 삶을 함께 꿈꾸는 연인들은 하자센터 사회적 기업 패키지로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어떨까.

 

하자 허브에서 나누자!
 

개인과 집단의 활동영역을 확장시키는 공공의 플랫폼*인 하자허브는 세대를 아우르는 마을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다. 하자 허브에는 카페, 갤러리, 소규모 협업실 등이 있다. 카페는 공익 활동을 하는 팀에게 무료로 공간을 일일대여해 활동 기반을 다지고 활동 재원을 얻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갤러리도 모든 개인전을 받는 게 아니라 공익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작가에게만 공간을 내준다. 현재는 우연히 제주도를 여행하다가 강정마을 구럼비의 아픔을 느꼈다는 화가 한아 씨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홍 팀장은 “하자 허브에서 자발성과 재능으로 운영되는 새로운 마을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연세인들도 하자센터에서 한다
 

하자센터에서는 연세인과 대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수업과 연계된 프로젝트에는 우리대학교 사회학과와 문화인류학과 1학년 학생들이 하자센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경험하고 조별로 과제를 제출하는 ‘하자에서 떠돌이프로젝트’가 있다. 학생들은 자전거 공방에서 버려진 자전거를 수리하고 재조립하면서 스스로 생산적인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학생들이 재창조한 자전거 중 자메이카 레게 가수 ‘밥 말리’를 형성화한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여기서 재창조된 자전거들은 송도캠 자전거프로젝트**에 100여 대 가량 지원됐다. 또한 ‘자공공(自共公) 아카데미’에 참여하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타인과 소통하는 가운데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지난 22일 자공공 아카데미에서는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과 함께 ‘무너진 아파트 공화국, 다시 만드는 삶의 공간은?’이라는 주제로 열띤 강의와 토론이 진행됐다. 치솟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이웃과 단절된 현대인의 주거공간을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조한 교수는 “시대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문제를 어떻게 풀지 머리를 맞대다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며 “급변하는 사회에서 온전한 시민으로 보다 더 지혜롭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 바로 하자센터”라고 말했다. 사회적인 화두를 반 발자국 앞서 생각하는 하자센터에서 판돌과 죽돌은 지속가능한 삶을 연구하고 실현하고 있다.

 

* 플랫폼: 본래 기차역의 승강장 또는 무대ㆍ강단 등을 뜻하나 그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장치나 시스템 등에서 이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틀 또는 골격을 지칭하는 용어
** 송도캠 자전거프로젝트: 송도캠 내에서 학생들이 직접 자전거를 조립하고 타면서 자전거를 생활화하는 프로그램


 

손성배 기자
89sungbae@yonsei.ac.kr
사진 오도영 기자
doyoungs9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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