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다음 달 4일로 100일이 된다. 100일이 숫자적 의미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최근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후 100일 만에 국가 운영 철학과 새 정부의 주요 정책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사실 또 100일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일반적으로 정부의 국정운영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면서 관망한다는 허니문(honeymoon) 기간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는 6개월 정도이지만 한국의 경우 그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얘기이다.
 새 정부가 100일의 허니문을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 첫째는 새로 취임한 정부가 선거운동기간에 내세운 공약들을 실제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조정하는 기간이다. 둘째, 이러한 조정을 통해서 새 정부는 앞으로 임기 동안의 국정운영 비전과 철학, 그리고 주요 정책 목표와 방향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셋째, 새 정부는 국정운영 경험이 짧기 때문에 그동안의 미성숙에 대해서 국민이 관대하게 평가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는 기간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100일은 이러한 허니문의 기대에 어긋나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이하여 기자회견을 갖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필수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무슨 일을 했고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은 소통의 정치를 위한 첫걸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국민과의 대화를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새 대통령으로서 소통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공약들이 새 정부하에서 어떻게 조정되고 실천될 것인가에 대해서 한 번도 체계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국정철학과 비전 그리고 주요 정책 목표와 방향 역시 종합적으로 제시된 적이 없다. 국민행복과 희망의 새 시대라는 막연한 구호만 있지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와 희망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새 정부의 허니문이 끝나는 이 순간 박근혜정부에 대해서 반신반의 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 원칙 그리고 약속의 리더십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신뢰와 원칙은 아직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약속은 이미 깨져가고 있다. 국민대통합과 대탕평을 인사대원칙으로 약속했지만 실제 인사는 함량미달의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인사로 그쳤다. 대통령에게 진언은 고사하고 소신을 가지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구미에만 맞는 인사를 했으니 전 청와대 대변인과 같은 망둥이가 나타나 국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경제민주화, 정부 3.0 그리고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정책적 과제 역시 모멘텀을 상실해가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청사진의 제시되기도 전에 단편적인 정책들이 가시적 효과 없이 진행되고 있다.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온갖 정사(政事)를 친히 보살핌)의 리더십으로 국정의 효율적 운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발적 책임행정은 사라지고 정부의 과업은 소극적으로 지연 처리되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4대 사회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척결을 약속했지만 그 대책은 묘연하기만 하다.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 제도를 개혁했지만 그 역시 변화의 결실을 얻기는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창설하여 정부주도로 창조경제를 일으킨다고 했지만 이 역시 기존의 경제부문을 가지고 노닥거리는 구호성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자리 창출은 케인주의(Keynesianism)적 정부개입이 실패한 이 시기에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민간부문의 기업정신과 창의성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국가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항상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사회의 모든 변화와 개혁은 국가주도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지 과거의 국가주의는 권력남용을 한 데 반해서 신국가주의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는 국가중심주의이다.
 지금은 거버넌스의 시대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치하는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강조되는 것이다.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근면과 성실을 믿고 있지만 적절한 성과가 없을 때에는 이마저도 공염불에 끝날 공산이 크다. 나 홀로 지시적 리더십 보다는 위임하고 함께하는 관계 지향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