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일주일의 모든 음악방송을 꿰고 산다. 지상파 3사의 모든 음악방송과 케이블채널의 음악방송의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무반의 모든 TV는 그 순간부터 채널고정이다. 군대는 그리스처럼 다신교(多神敎)다. 하지만 여신만을 숭배한다. 수많은 여신들은 TV에서 군인들을 향해 미소를 날린다. 군인들은 심장이 뛴다. 여자아이돌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상 속의 애인이고, 삶의 이유이자 희망이다.
군인들은 여자 아이돌의 컴백무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때는 2010년 10월 소녀시대 컴백 무대가 KBS 뮤직뱅크에 방송되는 날이었다. 육군은 저녁 7시가 되면 언제나 집합이 있다. 밤에 부대경계 보초를 서야할 인원들이 모여 순서를 점검하고, 그날 당직을 서는 간부가 훈시를 한다. 고등학교 아침조회가 저녁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필 그날 간부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행보관이었다. 부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깐깐한 간부가 행보관을 맡는다. 중대원들은 집합시간에 소녀시대가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방송이 나온다. “7시까지 막사 앞으로 근무자 집합하시랍니다.” 그 순간 TV에서 MC가 외친다. “그럼 신곡으로 돌아온 소녀시대 만나보겠습니다!” 모두가 비명을 지른다. 그 순간 필자는 머리를 썼다. 비록 고등학생 딸이 있는 아저씨이지만 우리 행보관은 싸이 노래를 컬러링으로 하는 젊은 감각의 행보관이었다. 모두가 절망했지만 필자는 희망을 봤다. 막내에게 집합이 시작되면 소녀시대의 등장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다.
집합이 시작됐다. “부대 차렷!” “당직사관님께 대하여 경례...” “충..” 그 순간 내무반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렸다. “소녀시대 나옵니다아아!!” 갑자기 행보관이 뒤를 돌아봤다. 행보관은 갑자기 커진 눈으로 “집합 끝”이라고 말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48세의 우리 행보관은 그렇게 쿨하게 집합을 끝냈다. 그리고 전 중대원은 TV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행보관은 TV앞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우리 중대의 영웅이 되었다.

임경업(신방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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