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유도원 김웅배씨의 일터를 찾아가다

봄을 알리는 목련이 꽃봉오리를 머금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두툼한 외투가 필요한 날씨. 그래도 따스한 도시락이 담긴 봉투가 왼손에 들려 있는 것을 내려다보면 마냥 든든하다. “다녀오리다.” 아내에게 무뚝뚝한 인사를 건네고 대문을 나서는 것으로 연세대 주차유도원 김웅배(60)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김씨가 버스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유도원 이씨가 올라탄다. “어 왔어?” 2년 째 매일 보는 동료의 얼굴이지만 볼 때마다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다. 날씨 이야기, 일 이야기, 오늘 맡게 된 구역 이야기 등을 두런두런 나누다 보면 어느 새 학교 앞에 도착한다.
업무가 시작되는 것은 아침 8시 이지만 7시 30분에 아침조회가 있다. 하루 동안 학교에 있을 행사나 업무상의 변동사항을 전달받는 자리다. 김씨가 오늘 맡게 된 구역은 100주년 기념관 앞 삼거리. 유도원 복장으로 갈아입고 주황색 유도봉을 오른손에, 묵직한 무전기를 허리춤에 차고 나면 준비완료다.
삼거리에서 김씨가 하는 일은 캠퍼스 내로 들어온 빈 택시를 밖으로 내보내고 차량이 많을 때 신호를 하는 것. 또 차량을 주차장으로 정확히 안내하는 것도 김씨의 업무다. 9시가 가까워지자 서서히 차가 늘어난다. 하지만 문제없다. 김씨의 수신호에 맞춰 차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꼬인 차선은 마법처럼 풀린다.
길을 건너는 학생들을 위해서 김씨는 유도봉으로 차량을 잠시 멈추게 한 후 다른 한 손으로 길을 내어준다. 그 따스한 손에 감사를 표하고 꾸벅 인사하고 길을 건너는 학생들도 많지만,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걷느라 앞도 안 보고 지나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김씨는 서운함 보다는 걱정을 표한다. “요즘 학생들이 스마트폰 때문에 차를 잘 보지 못해 위험한 것 같아요. 적어도 길을 건널 때만이라도 조심하면 좋겠어요.” 캠퍼스 안에서 속도를 내는 차들도 걱정이라고 한다. 주의하지 않는 보행자의 문제도 있지만 차들이 천천히만 움직인다면 사고의 위험이 훨씬 덜 할 것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주차유도원 일을 하다보면 겨울엔 가혹한 찬바람에 아무리 무장을 해도 가벼운 동상에 걸리는 것이 일쑤고, 여름엔 막을 겨를 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고역을 치른다. 봄, 가을에도 황사며 매연에 기침이 나오지만 여름과 겨울보단 일을 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보통 유도원들은 A조, B조 두 개 조로 나뉘어 한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번갈아 업무를 본다. 한시간 간격으로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휴식 시간이 되면 캠퍼스 곳곳의 A조 유도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성암관 지하에 마련된 유도원 휴게실로 향한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웬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뒤를 따라온다. 유도원들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고양이를 부른다. “야옹아”, “고양이야”, “나비야”, “이놈아” 고양이는 계속 따라오더니 휴게실 바로 앞 캐비닛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가르릉거린다. “우리가 이 놈을 갓난쟁이일때부터 키웠어요. 어미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가여워 밥을 몇 번 멕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여기를 떠나질 않더라구요.”
김씨를 뒤따라 들어선 유도원 휴게실에 들어서니 방 안에 저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도원들이 기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손님이 왔으니 마실 것을 대접해야겠다며 커피 포트의 전원을 올리니 휴게실도 마음도 따스하게 덥혀지는 듯하다. 고양이든 낯선 손님이든 구분 없이 환대하는 그들의 훈훈한 마음이 전해졌다.
한쪽에 자리한 장기판에 대해 묻자 김씨는 동료 김씨에게 “장기 한판 두지?”하며 말을 건넨다. 사리는 듯하던 김씨. 어느 새 장기판 앞에 앉아 김씨의 수를 읽느라 진지한 얼굴이 됐다. 두 유도원의 장기 한판. 각각의 장깃돌이 있어야 할 곳에 “딱!”하는 명쾌한 소리를 내며 수를 두는 그들이 바로 장기판 위의 유도원이다.
캠퍼스 안 연세 식구들의 배가 출출해지는 낮 열두 시, 다시 업무가 시작된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음식을 배달 온 오토바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오토바이 셋 중 하나는 꼭 김씨 앞에 멈추어 길을 묻는다. “백양관이요? 이 길 따라서 쭉 들어가시다가 왼쪽에 있는 흰 건물이에요!” 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따라 함께 커진 김씨의 목소리에 활기가 묻어난다. 사실 이 곳에 서 있다 보면 길을 물어오는 사람은 오토바이뿐만이 아니다. 송도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온 신입생들, TV 설치를 하러 온 기사들, 학교 지리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교환학생들까지. “줘기 아줘씨, 학관이 어디에요?” 발음은 서툴지만 또박또박 물어오는 외국인 학생에게 김씨는 “허허 외국인 친구가 한국말을 참 잘하네! 여기 옆 건물이에요”하며 학관을 가리킨다. 누가 어떤 건물을 물어오든지 김씨의 대답은 정확하고 신속하다. 수업에 늦었지만 건물이 어딘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찾아온 학생도 김씨가 알려 준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달려간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오후5시. A조 유도원들의 퇴근 시간이다. 입고 있던 유도원 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공학관 지하에서 퇴근 수속을 밟으면 오늘의 업무가 마감된다. 김씨는 오늘 하루, 수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곳을 알려줬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 있어선 안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황색 유도봉으로 그들의 길을 밝혀준다. 사람들은 흔히 삶을 사는 것도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삶은 이 길로 갈지, 저 길로 갈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마주하는 일이고, 때론 인생의 길 위에서 방향을 잃기도 한다. 그렇기에 속도를 늦추길, 아래를 보지 말고 앞을 보길 권유하는 김씨의 충고는 인생에 대한 충고로 들리기도 한다. 우리 인생의 길목에서 길을 잃었을 때 믿고 물어볼 수 있는 인생의 유도원이 있다면 김씨와 꼭 같은 미소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항상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안내해 줄 유도원 김웅배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땡큐.”

 

글 김경윤 기자 sunnynoon@yonsei.ac.kr
사진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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