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 불감증에 빠진 의료계, 일반인 병원균 감염 가능성은 낮지만 여전히 지역사회로의 세균 전파 문제 돼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세브란스 병원(아래 의료원)에서 학생회관으로 이어진 길목에 흰 가운에 하늘색 작업복을 입은 병원관계자들과 분홍빛 근무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삼삼오오 보이기 시작한다. 바쁜 와중에 잠시 끼니를 때우려 학생식당을 찾는 세브란스 병원 직원들이다. 위생과 청결이라는 목적 아래 착용하고 있는 흰 가운. 그러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근무지에서 입던 흰 가운을 그대로 입고 일반식당에 들어오는 모습에 몇몇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홍윤택(노문·08)씨는 “병원 근무복에 병원균이 묻어 있을 것 같아 찜찜하다”며 “의료인으로서 청결의식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러한 문제점을 병원 관계자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의사가운은 병원균 셔틀?

의사가운에서 감염을 유발하는 세균을 검출한 사례는 여럿 존재한다. 지난 2011년 한림대 진단검사의학과에서 30벌의 의사가운을 검사한 결과 대부분의 가운에서 평균 30여 종의 세균이 검출됐다. 이 중에는 항생제의 일종인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상구균(MRCNS)이나 황색포도상구균(MRSA)과 같은 병원균도 포함됐다. 이 균이 인체 내부로 유입될 경우 패혈증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지난 2009년에도 유사한 실험을 한 결과 28개의 가운 중 27개에서 다약제 내성 세균(다제내성균)이 검출됐다. 이에 대해 최준용 교수(의과대·내과학)는 “의료진이 착용한 복장은 병원 내 병원균에 오염될 위험이 항상 있다”고 설명했다.

가운에 있는 병원균의 위험성에 대해 이경원 교수(의과대·진단검사의학)는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진 대다수 일반인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포도상구균이나 대장균 등은 기회감염균*”이라며 “입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온다고 해도 아무 때나 감염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면역력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감염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강할 때는 몸속에 들어오더라도 대장 등 뱃속 점막에 누적된 뒤 대변으로 배출된다. 따라서 일반인이 내성균에 접촉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나 상처부위에 접촉할 경우 세균이 체내 조직의 다른 곳으로 쉽게 침투할 수 있어 문제가 된다.

 

우왕좌왕 위생관념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위생관련 법률에 의료인 복장착용과 활동범위에 관련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의료법관련 담당자 임선철씨는 “의료인 복장과 관련해 병원 근무복을 외부에 입고 나가지 말라는 규정은 별도로 지정돼 있지 않다”며 “이와 관련된 사항은 병원 내규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원을 포함해 고려대 안암병원, 경희대 경희의료원 등 대학병원 내규에서는 병원 근무복을 입고 외출하지 말라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의료원 감염관리실 관계자는 “별도로 마련된 지침은 없다”며 “개인의 상식 수준에서 근무복을 입고 외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병원의 내·외부적 인적자원 관리를 기획하고 평가해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관련부서에서도 “학생식당에서 병원 근무복을 입지 말아야한다는 것은 의료인 위생 상식으로 보긴 무리가 있다”며 병원 근무복을 입고 일반 학생식당을 드나드는 것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명시적인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을뿐더러 병원 근무복을 벗고 나가야 된다는 인식조차 미비해 의료인들이 병원 근무복장을 그대로 착용한 채 학생식당에 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점심시간, 학생회관에 식사하러 가는 길이던 의료원 간호사 송아무개씨는 “외출 시에는 근무복을 벗게 돼 있지만 연세대 학생식당의 경우 의료원 외부로 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일반 학생식당에는 근무복을 입고 외출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애매모호하게 답했다.

세브란스 조직문화팀 관계자는 “의료인들의 경우 시간이 부족해 가까운 곳에는 근무복을 갈아입지 못하고 외출하는 경우가 있다”며 “심장혈관센터와 같은 곳은 직원식당보다 학생회관의 학생식당이 더 가깝기 때문에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상적인 면역력이 있는 일반인의 경우 병원균에 대한 감염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의료인들이 근무복을 입고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환자를 대하던 의료인이 그 상태 그대로 일반인을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병원 내 내성균이 의료인의 근무복에 묻어 지역사회로 전파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일반인이 감염될 가능성이 낮다고 이에 대한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하면 안 되며, 병원 내 근무복을 벗고 나가는 것은 의료인들이 가져야 하는 위생상식”이라고 말했다.

이에 세브란스 직원교육 관계자는 “병원 근무복을 입은 상태로 일반 학생식당에 출입하는 의료인들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좋지 않을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면 의료원 차원에서 논의를 통해 근무복을 입은 상태로 일반 학생식당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지침을 마련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문제 상황에 대한 수동적인 자세를 보였다.

위생 불감증은 이제 그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위해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경영자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별도의 감염관리실을 설치해 전담 교수를 배정하고 질병의 감염을 예방한다. 그러나 ‘외출 시에는 병원 근무복을 갈아입어라’와 같은 세부지침과 관련해 정부나 병원의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채 의료인 개개인의 위생관념에만 맡겨지고 있다. 따라서 병원 근무복과 관련한 위생관념을 지키는 행동은 사실상 거의 실천되지 않을뿐더러 그 문제성에 대한 인식조차 미미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의사들의 흰 가운을 포함한 의료인의 근무복은 여러 병원균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제재는 물론 문제의식조차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물론 의사 및 병원관계자들이 스스로 위생상식을 갖추고 조금 번거롭더라도 병원 내·외부의 복장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이 다수의 의사 및 병원관계자들이 의사가운에 대한 위생상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의사가운 관련 법규 및 내규의 마련이 더욱 필요한 것 아닐까.

한편 정작 정부에서는 감염관리예방에 필요한 손소독제, 마스크, 가운 등 소모품에 대한 의료급여를 인정하지 않아 감염관리대책이 마련된다 해도 그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 역시 감염관리문제가 개별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보건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인식을 갖고 의료감염관리를 위한 전담조직 구성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대책을 실행하고 위생관념 교육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회감염균 :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염증을 잘 일으키지 않지만 면역기능이 감소된 사람에게는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키는 미생물

박희영 기자
hyg91418@yonsei.ac.kr
사진 김재경 기자
sulwondo21@yonsei.ac.kr
그림 김진목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