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 Story]

오늘날의 지구엔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타 선진국들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늘 넘쳐나는 잔반문제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엔 기아(飢餓)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된 과거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3세계에선 여전히 매일 5만 명, 연간 1천800만여 명의 사람들이 빈곤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이렇듯 심각한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음에도 국제빈곤문제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은 극히 낮은 수준이다. 국내 빈곤문제와 사회복지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히 진행돼 왔음에도 국제빈곤문제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우리대학교 원주캠은 지난 1990년부터 운영해오던 지역발전연구소를 2010년 확대 개편해 빈곤문제국제개발연구원(Institute for Poverty Alleviation and International Development, IPAID)을 설립했다. 이번 랩스토리에서는 국제빈곤문제분야에서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권위를 지닌 연구소인 IPAID를 소개한다.

IPAD? IPAID! IPAID의 탄생

지난 2010년 우리나라는 OECD내 원조(援助) 선진국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의 24번째 정식회원국이 됐다. DAC는 적절한 원조조직과 정책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선진국들에 한해 가입자격이 부여되는, 전세계 대외원조의 90%를 담당하는 권위있는 기구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61년 OECD 출범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최초의 국가가 된 것이다. IPAID 원장 김판석 교수(정경대·행정개혁)는 “기독교 정신과 진리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건학이념으로 삼고 있는 우리대학교가 국제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IPAID의 설립취지를 밝혔다.
국제빈곤은 그 발생 원인이 지역마다 다양하고 복합적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각종 이해관계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다. 따라서 이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통해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이에 김 교수는 “원주캠은 정경대뿐만 아니라 과기대, 보과대, 원주의과대 등 다양한 단과대를 보유하고 있어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이렇듯 탄탄한 설립기반을 가진 IPAID는 국제빈곤문제에 대한 그 비전과 철학의 탁월성을 인정받아 설립 첫해인 2010년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IPAID의 활동

IPAID는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그리고 북한지역의 빈곤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남아시아의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등을 지역별 거점지역으로 정한 후, 연구원들이 직접 그 해당지역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경우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농촌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연구원인 이수철 교수(IPAID·사회학)는 “국내에선 국제빈곤문제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문화되고 체계화된 자료들이 부족해 연구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면서도 “빈곤지역을 방문해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막연해 보이기만 하던 연구를 진척시켜나갈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IPAID 연구원들은 국제빈곤문제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분석하기 위해 이렇듯 직접 현장을 발로 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개발사업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네팔 티까풀지역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이 진행하는 보건의료 환경개선사업에 IPAID가 보과대와 의과대 교수들의 협조를 얻어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듯 해외에서의 활동이 많은 특성상 IPAID는 많은 국제기구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굿네이버스와 KOICA, 아시아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 연변대학교 민족학연구소 등의 기관뿐만 아니라 UNDP*와도 협력관계에 있다. 이러한 파트너십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시아인 최초 세계행정학회 회장 김판석 원장과 KOICA 이사 안동원 부원장의 역량, 그리고 해외 단체들을 직접 방문해 협력관계를 이끌어낸 연구교수들의 노력 덕분이다. 또한 해외 단체들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넓히고 제3세계에 한국의 경제성장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르완다와 모잠비크의 공무원들을 우리대학교에서 교육시키는 사업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한편 대학원생 이상만이 참여할 수 있는 대다수 연구소들과 달리 IPAID는  학부생들에게도 다양한 참여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학기당 10회씩 열리는 위클리 포럼에 학부생들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위클리 포럼에는 국제빈곤문제 분야에서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인사들과 국내에 머물고 있는 제3세계 각국 대사들도 자주 참여한다. 김 원장은 “정의관 3층 주변에 위클리 포럼과 관련한 공지를 매번 게시해 놓지만 참가하는 학부생은 거의 없다”며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포럼인 만큼 국제빈곤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들이 참가한다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IPAID에서는 수시로 학부생들을 연구보조원으로 뽑고 있다. 김 원장은 “어학이나 컴퓨터 등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국제빈곤분야에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환영한다”며 학부생들의 참가를 기대했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모두의 문제

IPAID에 소속된 교수들은 강의와 개인연구라는 본연의 업무에 더해 국제빈곤연구업무까지 맡고 있다. 이렇게 사적인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연구원 일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기 때문에 제3세계 국가들이 동질감을 느낀다”며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제3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그들에게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연구원 백인립 교수(정경대·사회복지학)는 “극심한 가난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동시대 사람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연구를 통해 제3세계 빈곤문제를 완화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빈곤문제는 18세기까지만 해도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인한 천재(天災)였다. 하지만 충분한 기술과 자원을 보유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곤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인재(人災)라고 봐야 한다. 백 교수의 말처럼 제3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인재에 대해 같이 아파하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윤리적 의무가 아닐까? 윤리적 이유를 배제하더라도 우리나라가 가난한 원조 수혜국에서 시작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는 국제사회에 되갚아야할 빚을 안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연구소 IPAID. 우리대학교뿐만 아니라 제3세계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될 IPAID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우리말로는 ‘유엔개발계획’이라고 하며, 유엔 전체의 개발 원조계획을 조정하기 위한 기관이다.

 

박일훈 기자
ilhoonlove57@yonsei.ac.kr
자료사진  IPAID 홈페이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