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다치는’ 국정감사, 시민이 나선다

‘국정감사모니터시민연대(아래 국감연대)’의 국정감사(아래 국감) 방청 및 평가 활동이 14개 모니터 대상 상임위원회(아래 상임위) 중 6개 상임위(국방, 통일외교통상, 건설교통, 보건복지, 재경위, 정투위)에서 봉쇄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기본권인 방청권 보장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항의도 거세지고 있다.
국감연대는 국감 방청과 의원활동 평가를 위해 3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연대체로 지난 9월 8일 발족했다. 국감연대는 ‘우리가 투표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의회활동에 대해 발언하거나 참여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아 왔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국민이 주인되는 국회, 시민이 참여하는 국감’을 구호로 내걸고 발족기자회견을 가졌다. 국감연대는 국회를 유권자의 것으로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자구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유권자들만큼 불행한 유권자는 없다. 유권자 대접은 선거때만 잠깐, 그 외의 기간에는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민생현안이 왜곡돼도 이를 견제할 아무런 자구적 수단이 없는 무권자이다. 정치냉소주의가 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회의 국감 활동을 시민단체가 평가하고 이를 유권자들에게 알리고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상임위 활동에 대한 자유로운 방청이 보장되고 있으며, 의정감시단체들은 국회의원들을 평가하여 ‘best/ worst’로 나누어 공개하는 데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위원들은 시민단체가 전문성·공정성 없이 “자기 입맛에 따라 worst의원으로 낙인찍어 여론재판에 부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모니터 단체들과 의원들은 수년간 관련 이슈들을 위해 활동해 온 전담활동가, 관련분야 전문가들이다. 설사 시민단체의 전문성이 불충분하다 하더라도 이번 평가는 유권자들에 의한 의정활동평가를 정착시키려는 첫 시도로서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전문성 시비로 의정평가 활동 자체를 질식시키는 것은 정치개혁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평가의 공정성 시비도 있으나 국감연대는 의원의 주장이나 신념을 평가하지는 않으며 정해진 지표에 따라 질의의 치밀성, 논리성, 준비정도를 평가하는 만큼 평소의 의정활동을 고려하여 시민단체의 공신력만큼이나 그 평가를 받아들일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의 10명 중 9명이 국감연대의 방청평가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난 7일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 과정에서 ARS 여론조사 결과를 집계한 결과, 방청허용이 6만 1천1백41건, 일부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3천6백90건으로 94.3퍼센트의 시민이 시민단체의 국감 방청에 찬성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집계된 pc통신 ‘HITEL’ 미니 리서치 결과도 방청허용 2백31건, 반대 9건으로, 네티즌의 96.3퍼센트가 시민단체의 국감 방청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심이 이처럼 압도적으로 시민단체 방청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회의원들과 상임위는 아직도 민심의 겸허한 수용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왜 확인된 민심을 애써 외면하는가?
그 답은 방청을 불허한 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보이는 행태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국방위, 통일외교통상위 등 방청불허 상임위 의원들은 현장질의를 서면질의로 대신하는 무성의한 태도로 국감에 임하는가 하면, 총선을 앞둔 지역구 방문으로 1년에 한번 20일간 주어진 소중한 국감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건교위의 경우 지역구를 의식한 선심성 질의를 남발하는가 하면, 대다수 의원들이 국감장을 떠나 사실상 국감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부 상임위원이 방청을 봉쇄하는 진정한 이유가 밀실국감 속에서 누려온 갖가지 반유권자적 직무유기가 유권자의 눈앞에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보여준다.
국감연대의 모니터를 둘러싼 논란과정에서 드러나는 무지와 몰이해, 상식이하의 반유권자적 발언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월 6일 MBC 뉴스에 보도된 교육위 의원들의 발언은 국감연대의 평가활동에 대한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감정적인 반발로만 일관하고 있어 이들이 과연 국민을 대표할 자질을 갖추었는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앉았다가 그냥 나오면 되는데 들어간 곳에서는 꼭 평가를 하니까 못들어오게 해야 해”, “화장실 몇 번 갔는지 이것 갖고 그러는데”, “채점단도 선거로 뽑아야지, 평가하려면 뽑아오라고 그래” 등 의원들이 내뱉는 발언들은 그들의 수준 이하의 무지와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유권자들이 의원을 평가하고 이를 공표할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시민단체는 미리 공개한 객관적 지표를 토대로 단체의 공신력을 걸고 의원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은 권위주의와 반유권자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민심의 요구가 무엇인지, 자신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철저히 망각하고 있다. 민심과 국회의원들간의 이러한 격차, 이 메울 수 없는 격차야말로 낙후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 할 것이다.
시민의 의정평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회의원들에게 이미 확인된 민심을 확실히 전달하고 헌법에 보장된 방청평가권을 보장토록 하기 위해서 국감연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다 단호한 시민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감연대는 불허 상임위 및 문제발언 의원들에 대한 항의 방문, 항의 전화걸기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방청불허 상임위 소속 의원별로 방청 찬반여부를 물어 이를 의원평가에 반영, 공개함으로써 공천 및 선거과정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방청불허 정치인 국민심판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용기있게 방청을 보장한 다른 상임위 의원들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도 이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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