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삶은 거부한다! 홍씨와의 생기발랄 수다 한판

19세, 무려 대학교 1학년 휴학생 신분으로 지난 2007년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됐던 극작가 홍지현씨를 만났다.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검정고시를 봤고, 성균관대 약학대에 진학했으면서도 약학보다는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특이한 이력의 홍씨. 이젠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가 된 지금, ‘서울연극제’에 자신에게 신춘문예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변기」의 후속작을 다시 들고 나왔다. 약사에 신춘문예 당선자, 그리고 그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린 극작가, 무엇이 약사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그가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이번 서울연극제 참가작인 「변기 속 세상」은 홍 작가의 지난 2007년 동아일보 희곡부문 신춘문예 당선작 「변기」의 후속작이다. 홍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운이 좋아’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듯, 「변기 속 세상」도 연출가 윤사비나씨와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아 「변기」의 뒷얘기를 구상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십대 때 ‘신춘문예’라는 큰 선물을 안겨준 「변기」라는 작품에 대해 홍 작가는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쓴 이야기도 아니고,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라며 “그냥 재미있게 한번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변기」에 관하여

지난 2007년 당시 ‘신춘문예 당선’은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경험이어서 그다지 실감도 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뒤의 나날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홍 작가는 “신춘문예에 희곡부문으로 당선된 그날, 대학생활의 모든 기쁜 ‘오늘’들을 한 번에 당겨 써버린 것 같다”며 대학생활을 회상했다. 어린 나이에 ‘천재’소리를 들으며 「변기」로 이름을 알린 홍 작가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남은 대학생활동안 ‘주변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과 ‘당선작이 탄생한 이후의 슬럼프’를 겪었다.


어린 홍 작가에게 「변기」는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의 반영이었다면, 그 후속작인 「변기 속 세상」은 ‘그만! 이제 그만 알고 싶어!’라는 외침의 반영이라고 한다. 홍 작가는 “극중 대사에도 나오는데, 옛날에는 지금처럼 남의 사생활들이 이렇게 속속들이 보여지지는 않았다”며 “요즘은 세상이 너무 많이 알려주고, 또 우리가 너무 많이 안다는 게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런 홍 작가의 생각은 연극에도 반영된다. 홍 작가는 “예전 같으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제일 예쁜 애였다면, 요즘엔 전국적으로 세계적인 미인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극 속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 “그게 무섭게 느껴지지 않냐”고 관객들에게 반문한다. 어쩌면 홍 작가는 어린 시절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아이가 성장해서, 너무 넓은 세상을 갓 맞닥뜨렸을 때의 두려움을 지금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변기」가 십대 시절의 홍 작가의 시선과 대응된다면, 「변기 속 세상」은 조금 더 성장한 홍 작가의 시선과 대응된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의 성장과 동시에 이뤄지는 작품적 연속성을 찾아보는 재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희곡 쓰는 약사? 약 제조하는 극 작가!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의 취미 생활에,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가진 홍 작가이지만 학교 다닐 당시에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다. 단순 암기 보다는 관심 있는 것에 대해 깊이 파는 것을 좋아한다는 홍 작가는 “약학 수업은 항상 교수님들께서 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시기 때문에 재미없을 수가 없는데, 시험은 단순 암기 형식이 많아 공부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딱히 콕 짚어 설명할 수는 없는 ‘이유 없이 힘들었던’ 대학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어엿한 약사가 된 홍 작가지만 잘 맞지 않는 적성 때문에 방황하기도 했다. 80~90%의 합격률을 보이는 약사국가시험에 한차례 낙방하고 재도전해 2년 만에 합격했다. 약사국가시험에 낙방한 당시, 홍 작가는 누구나 안정적인 길이라고 인정하는 직업 중 하나인 약사의 길에 대해 반문해보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정된 삶’은 재미없다!

 

현재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약사 일과 영어공부를 병행하며 연극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던 것’들에 대해 반문하게 되고, 알던 것이 다시 ‘모르는 것’이 돼 버린다고 하는 홍 작가는 약사라는 명확한 직업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이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안정된 삶’은 그저 미래의 편안한 삶에 대한 막연하고 안이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라 말하는 홍 작가처럼 성급히 ‘안정된 미래’를 찾기보다는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는 것은 어떨까.

 

 


박희영 기자 hyg91418@
자료사진 홍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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