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한 마디는 마냥 심오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만일 내일 당장 지구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정말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 대부분 대피소를 찾아 허둥지둥할 것이다. 지구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이 한 목숨 보전하고 싶은 것이 인간 심리 아니겠는가.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 욕구 5단계설* 중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같은 생존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는 다른 어떤 상위 욕구도 충족될 수 없다고 보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종말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고군분투 노력을 소개한다. 혹시 나중에 지구 종말의 시점이 닥쳤을 때 한 사람이라도 「연세춘추」를 집어 이 기사를 보고 희망을 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종말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미국 캔자스에서는 미사일 기지를 개조한 ‘지구 멸망 대비 지하 아파트’가 분양되고 있다. 통칭 ‘아마겟돈 콘도’로 불리는 이 아파트는 안락한 거주 공간과 수산물 양식장, 수경재배 정원 등이 있어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이 가능하다. 또한 이곳에는 극장 및 병원, 도서관, 풀장이 갖춰져 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초호화 지하벙커 역시 약 200명의 인원이 생활할 수 있다. 배우 톰 크루즈 역시 이곳에 지하 벙커를 지어 놓았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재현하고 있는 노르웨이도 눈에 띈다. 노르웨이 정부가 ‘스발바 국제 종자 저장소’를 지어 지구 최후의 날에 대비해 각 나라에서 보내온 씨앗 450만점을 보관하고 있다. 한국산 벼, 보리, 콩, 채소, 원예작물 등 1만 3천점도 있다. 성서에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에 대비해 지구의 동식물을 안전하게 지켜냈던 것처럼 이곳은 대재앙 이후 살아남을 사람들을 위한 식량의 씨앗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구 종말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지난 2월 3일 방송된 ‘스펀지’에서는 지구종말론자들이 충청북도 단양을 최적의 은신처로 소개했다. 단양이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소백산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안락하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에 대해 직장인 강진호(37)씨는 “언론 매체에서 가끔 접할 수 있는 지구 종말론, 그리고 지하 벙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구종말론이 모두에게 두려움만을 안기는 것은 아니다. 김채리(생디·12)씨는 “지구 종말론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하 벙커를 짓는 것과 같은 노력은 쓸데없이 보인다”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병규(기계·11)씨 역시 “언젠가는 지구 종말이 도래할 것이지만 그것은 까마득한 미래의 얘기”라며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그 비용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나”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구가 정말로 멸망할 지의 여부와 재앙을 대피하기 위한 방법을 아는 것보다는 ‘지구 종말론’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문과대 김옥경 강사는 “독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저서 『책임의 원칙』을 통해 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며 “그는 환경 문제를 환기시키면서 자연에 대해 지속적인 권력을 행사해 온 인간들에게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프로메테우스 정신으로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지만 그로 인해 환경의 파괴가 수반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지구 종말론도 그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는 김 강사의 말처럼 현재 우리는 이 지구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안이한 자세를 바꿔야 한다. 지구 종말론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학설 중 현재 가장 지지받고 있는 ‘인류에 의한 멸망’을 생각해본다면 지금이라도 경각심을 가지고 지구를 살려 보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지구 멸망을 알리는 모래시계의 시간’을 좀 더 늦춰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나눠질 수 있으며 각각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욕구, 자기존중감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명명된다. 매슬로는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의 욕구 실현으로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김정연 기자  chadonyeo_j@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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