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간 연구의 취지 살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연세대는 오는 2학기부터 2개 이상의 전공이나 학과, 학부를 연계해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연계전공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4월 8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기사다. 그러나 공고된 바와 달리 이번 학기에 연계전공제가 시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학교당국이 이제서야 연계전공 운영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학생들을 의아스럽게 만들고 있다.
연계전공이란 전공 간의 벽을 허물고 융통성 있는 학제간 연구를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제도. 예를 들어 문과대에서 ‘미학입문’, 공과대에서 ‘소프트웨어실습’, 생활과학대에서 ‘디자인개론’ 등 지정된 과목에서 36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영상예술학’을 이중전공·부전공으로 인정해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다.
이미 연계전공제는 이화여대, 서강대 등에서도 그 장점을 인정받아 현재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대학교도 2000학년도 1학기부터 유럽지역학, 영상예술학, 한국학, 중국학, 미국학, 일본학, 외교통상학 및 인지과학의 8가지 연계전공영역을 개설할 예정이다.
그러나 당초 이번 학기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연계전공제도 마련이 지연되자,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 결정부터 내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교무처장 주인기 교수(상경대·회계학)는 “학생들에게 홍보할 기간이 필요했고, 이번 학기부터의 무리한 시행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학교당국은 지난 8일부터 연계전공 공청회를 마련하고 의견 수렴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제도의 대상이 될 학부생들의 참여가 적어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게다가 이미 연계전공과 유사한 협동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이 커리큘럼 부실과 공간 부족 등의 문제를 호소해왔음에도 이들과의 의견 교류 역시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연계전공제를 시행하기에 앞서 교원확보 및 제반시설 확충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 개설된 과목을 가르칠 인력과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지역학의 경우, 현재 우리대학교에 지역학을 전공한 교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초빙강사에만 의존할 경우 교육의 질이 떨어질 위험도 크다. 이 때문에 단순히 독립적인 개별학과 개설과목들을 모아 놓고 ‘연계전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부제 시행 이후 전공 이수 학점 감소로 전공 교육의 질이 의심받고 있는 상태에서, 학제적이고 폭넓은 분야를 다루는 연계전공 인정이 기존 전공과 같이 36학점으로 이뤄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자칫하다간 내실 없이 겉만 화려한 전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상예술학’ 전공 책임을 맡고 있는 임정택 교수(인문학부·독문학)도 “학부과정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전문 지식은 대학원에서 배워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나타내 깊이있는 교육은 기대하기 힘듬을 시사했다.
이미 연계전공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화여대와 서강대의 경우 이러한 문제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연계전공생과 제1전공생이 함께 듣는 수업의 경우, 연계전공생들은 수업 이해의 어려움을, 제1전공생들은 수업의 질 저하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고 있어 강의 난이도 조정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연계전공 수요에 걸맞는 강의 제반시설이 부족해 몇백명이 듣는 대형강의나, 수업기자재의 부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에서는 대책으로 연계전공생과 일반전공생을 각기 분반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4회에 걸쳐 계속 진행될 연계전공 공청회에서 학생들을 포함한 다양한 학교구성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예상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처음 시행하는 제도이지만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연계전공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학교당국의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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