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청년이여,
아직도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가?”

지난 98년은 ‘실업’이라는 문제로 온 나라가 골머리를 앓았던 한 해였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연령별 실업률에서 10대(19퍼센트)에 이어 20대가 11.7퍼센트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 98년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 최대 쟁점은 ‘청년 실업’ 문제였으며, 지난 98년 연고제 기간 동안 우리대학교에서 열린 ‘나이 서른에 우린’, ‘3천원짜리의 하루’ 등 여러 문화제의 화두도 ‘청년 실업’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최근 경기가 호전된다고들 한다.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치에 의하면 실업률도 서서히 감소하고 있고, 기업들의 공개채용도 늘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서는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고전에도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도서관은 만원이었고, 얼마전에는 우리대학교 한 학우가 취업문제로 자살을 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98년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의 대졸자 취업률은 50.5퍼센트, 취업률 조사를 시작한 68년 이래 최악이다. 전문대 졸업자의 취업률도 66.3퍼센트로 최근 10년 중 최저치다. 취업전문업체인 리크루트사는 지금까지 누적된 대졸 미취업자와 내년 초 졸업예정자를 합해 40만여명이 일자리를 찾고 있으나 30대 기업의 신규채용 자리는 1천여개에 불과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꿈꾸는 장미빛 미래는 환상일 뿐, 여전히 우리에게는 잿빛 미래만이 점쳐진다.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젊은이들에 대한 실업대책은 공공근로사업의 정보화 요원이나 정부지원 인턴직원 채용 정도가 전부다. 특히 정부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았던 인턴사원제는 정치적 배려일 뿐 실업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98년 6월 노동부는 2천8백여명의 전문대 포함, 대졸 및 대졸예정자를 대상으로 90개 기업에 인턴제를 도입했다. 정리해고를 하는 마당에 무슨 신규채용이냐며 손을 내젓는 기업들에게 훈련비 명목으로 40만원에서 8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그러나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 정규직원을 채용한 뒤 인턴으로 전환하는 등 악용하는 사례가 늘자 지난 98년 11월 대학이 직접 기업과 채용계약을 하고 인턴사원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틀을 다시 뜯어 고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학별·지역별·기업별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빚어지고 정규직을 보장하는 대기업으로 인턴사원이 옮겨가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2백대 1의 경쟁률은 예사고, 채용되고서도 과중한 업무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 ‘신(新)노동착취’, ‘현대형 노비’ 등의 말만 무성히 남겼다. 부질없는 희망만 키워 허탈감만 더하는 악순환을 초래했지만, 외국에서도 대졸자 인턴사원제도는 전례가 없어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으로 노동부는 보고 있다. 결국 정부도 올해 경제 성장률이 하반기에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태여서 올해도 대학졸업생을 비롯한 고학력자의 취업은 멀고도 힘겨워 보인다. ‘여학생과 군대 갔다온 남학생은 대학원 보내고, 군대 안간 남학생은 군대에 보내는 것’이 현재 정부가 마련한 신규 실업자 대책이라는 핀잔을 들을 만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청년실업자가 50만명에서 60만명에 이르면 사회적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온다고 말한다. 실업의 늪에 빠진 지금의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우리사회 전체에 쌓여가는 불만에 불씨를 던질 수 있다. 정권 초기에는 실업난을 과거 정부의 잘못으로 인식하지만 장기화될수록 현 정권의 책임도 함께 따지게 될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자들 특유의 행동력으로 조직화되고 정리해고를 당한 실업자들과 합류한다면 적지않은 사회적 파급력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현 정부로서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직업 사냥꾼으로 전락한 젊은이들에게 삶을 깊이있게 성찰하거나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서울대의 경우 ‘한국근대사상사’, ‘논리와 비판적사고’, ‘고고학사’ 등 인문학 기초 강좌 3백86개가 폐강되는 등 대학마다 기초학문 폐강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서서히 문화적 향취를 잃어가고, 지적 토대가 무너지면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결국 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정규직 축소 비정규직 확대, 수시 모집과 산별적 채용, 대학생 인턴 활용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와 순수시장경제에 의존한 단기적 정책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조백현 부장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한 긴축정책, 사회복지 축소 등은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배제함으써 산업현장을 피폐화시킨다”며 “초국적자본 및 국내자본에 대한 규제를 통해 근본적 해결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대 대국회투쟁본부장 이국진군(사회과학계열·2)은 “실질임금의 삭감없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취업연령제한 폐지로 그간의 누적된 고령실업자를 구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대학은 너무나 조용하다. 학생운동 진영이나 다른 사회 단체 역시 교육문제나 국가보안법에 치중한 나머지 청년실업에 대한 논의가 많이 사그라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와중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실업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나는 괜찮겠지’하는 생각으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폴리아나 현상’, 즉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일단 ‘어떻게 되겠지’하고 바라는 안일한 심리가 학생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봐야 무엇을 바꾸겠냐는 회의감과 함께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능력을 개발, 자신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 데 몰두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자신을 추스린다. 그래서 오늘도 도서관에서 영어와 컴퓨터, 고시공부와 씨름한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세계화 정책과 신자유주의 공세가 비록 압도적이기는 하지만 자본의 경영 합리화 정책은 노동자의 연대·단결과 맞물려 역학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반토막의 검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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