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이제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

▲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는 이제 가장 ‘값싼’ 자유 중의 하나가 돼 버린 듯 하다. O양 비디오 사건을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신나게 보도한 3류 신문도, 최장집 교수의 논문을 멋대로 곡해해 가며 안보상업주의의 극치를 보여준 극우보수신문도 모두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더해 또다시 새삼스럽게 ‘언론의 자유’를 들고 나온 ‘전사(戰士)’들이 등장했다. 바로 『중앙일보』다.
▲ 국세청의 보광그룹 세무조사에 『중앙일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정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음모’이자 ‘현 정권의 언론 탄압’이라는 것이다. 정략적인 꿍꿍이속이 있는 한나라당의 목소리를 빌어, 사주 홍석현을 보호하는 기사로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현 정부에 맞대응을 하겠다며 전 기자들이 전투정신으로 무장하고 그동안 정부의 언론탄압에 굴종해 왔던 역사를 폭로한 『중앙일보』의 작태는 민망스럽기 그지 없다.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다들 같은 언론사로서의 ‘의리’인지 논평이나 언급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재벌 언론, 정부의 언론 조작, 언론사 담합… 등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듯 하다.
▲ 정권이 예전보다 훨씬 교묘하게 언론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물론 충격적이다. 『중앙일보』에서 얼마전 실시했던 여론조사 기사 제목도 정권의 종용으로 ‘신당은 총선 위한 1회용 64.5%’에서 하룻밤 사이에 ‘IMF 극복 시간 더 걸린다’로 뒤바뀌었다니,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도 필요하다면 여론을 호도하는 짓마저 서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번 폭로를 계기로 『중앙일보』는 물론 다른 언론사들 역시 정부의 언론 탄압 사례를 철저히 규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사실 정부의 언론탄압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언론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정론을 펼치고자 하는 진정한 독립 언론이라면 사외 뿐 아니라 사내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은 사주가 소유와 경영, 편집까지 전 부문을 잡고 흔드는 사주 개인의 ‘광고지’와 다름없다. 이번 『중앙일보』의 추태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우울한 사례다. 평소 편집권이라는 기본 권리조차 거의 빼앗기고 있었던 『중앙일보』 기자들이 오히려 홍석현 사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면을 도배하며 전투적 대응도 불사한 것은 이들이 결국 ‘노예’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 보광 세무조사가 시작될 즈음에도 홍석현 사장이 간부들 앞에서 “재산을 잃어버리더라도 중앙일보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며 “정권이 바뀌는 2, 3년 후에 보자”고 했다고 하니, 아마도 홍석현 사장은, 그리고 혹시라도 비리가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는 각 신문사주들은 이미 성역 속에서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누려온 것 같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에게는, 그 흔한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다만 ‘언론사주(社主)의 자유’가 있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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