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자기 몸을 악마에게 팔아 요술, 주문, 기타 부적이나 마술을 얻어 어린이, 가축을 죽이는 자는…유죄를 선고하여 처벌한다”, 이것은 3백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를 ‘화형’으로 타오르게 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8세의 ‘마녀사냥’ 선포문이다. 그 후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화형’을 당해 잿가루로 사라졌다. 당시 사람들은 마녀나 그 피를 태우면 마녀의 힘이 약해진다고 믿어 마녀를 말뚝에 달아놓고 불로 태웠다. 그러다 마녀가 다시 기어나오면 또 집어넣어 ‘전소’시키고야 말았다. 그래야 마녀의 힘이 완전히 사라져 ‘선량한’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도 태워 죽였지만 그로부터 5백여년 후 1970년 한국, 마녀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열살을 갓 넘긴 소녀들이 잠 안오는 약을 먹고 하루 스무 시간을 넘겨 일해 옷이며 천이며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 냈다. 하루에 커피 한 잔 값만 주면 귀신처럼 일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는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들이 ‘근로기준법’을 들고 일어서자 곧 ‘마녀’로 돌변하고 말았다. 그들의 마땅한 권리 주장을 죄목으로 삼은 ‘선량한’ 사람들의 ‘마녀사냥’이 결국 전태일이라는 청계천의 한 노동자를 ‘화형’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만 중세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태우면 사라진다는 ‘마녀’의 힘은 전혀 약해지지 않고 화형장의 불길처럼 살아서 거세게 퍼져나간 것, 단 하나다.
지난 9일 ‘1999 다시 만나는 전태일’ 문화제가 ‘전태일 기념사업회’ 주최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근로기준법’과 함께 화형을 자청한 전태일을 기리고 이 시대는 또다른 전태일을 요구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자리가 됐다. 파업을 하면, 임금을 올려달라면,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을 무작정 ‘마녀’로 몰아가고 있는 김대중 정부 하의 노동상황은 여전히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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