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가!

“백지 세 장이 주어졌다. 8년과 7년, 그리고 3년 동안 ‘우리 회사’라고 생각하며 다녀온 그들에 대한 ‘우리 회사’의 요구였다.” 하루 잔업특근을 거부한 대가로 사직서를 요구하는 그들. ‘배신감’이란 단어가 이렇게 들어맞을 때가 있을까? ‘사원을 가족처럼 회사일을 내일처럼’이라는 사장의 친필같은 위선도 없다.
‘어용노사협의회 폐지와 노조 인정, 일당 1천5백원 인상, 강제잔업 철폐’. 세광이 노조를 결성하며 내건 기치가 그다지도 대단하다고 조합원들은 졸지에 실직자가 된다. ‘구사대’라는 명목으로 들어닥친 현장남성동료들과 엉켜 싸우는 조합원들 뒤에는 이를 종용하는 검은 구름이 자욱하다.
“보름이 지나도록 제대로 이루어진 교섭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반응없는 회사를 향한 조합원들의 투쟁은 그야말로 ‘소 귀에 경읽기’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사장집에 항의하러 갔을 때 대궐 같은 집을 보호하는 높은 담장과 꿈쩍 안하는 정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합원들을 위압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공권력은 어떤 건축물보다도 철두철미하게 사장의 보호막이 돼준다.
절망적으로 열세였던 세광노조는 철순의 죽음이라는 크나큰 희생을 구심점으로 하나가 된다. 그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조합원들은 난방조차 안되고 끼니도 제대로 때울 수 없는 악조건의 한 겨울을 악바리처럼 버텨낸다. “노동자의 서러움 투쟁으로 끝장내자.” 철순이 마지막에 걸려고 했던 현수막이 그녀의 유언마냥 굴뚝에 얹혀진 채 펄럭이던 것을 조합원들은 잊을 수 없다.
농성파업에 들어간 지 1백여일, 오늘도 투쟁에 지친 누군가가 농성장을 떠난다. “많이 줄었구나.” 위원장 미정의 혼잣말이 듣는이의 가슴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을 일으킨다. 오늘 떠난 윤희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조합원이었기에 미정은 더 심란하다. 사장집 항의방문 때 끌려간 경찰서에서였다. “너 이름 뭐야?” “깡순이.” “생년월일은?” “깡순이.” 위원장인 미정도 주눅 드는 철창 속에서 당당함을 굽히지 않았던 윤희는 조합원들의 우상이었다. 이런 윤희의 부모님에게 날라든 회사와 학교의 편지는 윤희를 ‘불법 집단행동’에 가담하는 불량학생으로 치부해버린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농성장을 떠나가는 윤희의 마음은 몇번이고 멈춰 서 돌아볼 만큼 불편하다.
조합원의 잇따른 이탈과 보이지 않는 결말에 지쳐있는 조합원들에게 김세호사장은 2억원이라는 미끼를 던져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노조의 해산과 조합원들의 퇴직 뿐이었다. 그에게 조합원들은 단지 4천8십원짜리 ‘물건’.
“2억, 너무나 큰 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했던 돈은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 뿐, 돈에 대한 탐욕이 아니었습니다”라며 그들에게 있어 거액을 단호히 뿌리치는 조합원들은 『사하촌』의 마지막처럼 캄캄한 새벽, 펄럭이는 깃발을 들고 소리없는 함성으로 세광을 나서며 후미를 장식한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한 가지. 우리의 일터를 돌려달라!”
소박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소망이다. 이것은 미정과 윤희와 철순의 외침이며 노동자 작가인 방현석 자신의 외침이자, 이 나라 노동자들의 함성이다. 이젠 진부하게도 들릴 수 있는 외침이 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굴곡된 역사의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그들을 볼 때 우리는 그 함성의 의미를 되새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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