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열정으로 세계를 누비는 저널리스트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석양빛을 바라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들고 있는 사람. 우리에게는 모 커피 광고로 더 잘 알려진 광고의 주인공 김희중씨(59년 심리학과 입학). 그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최초의 동양인 편집장’, ‘미국 기자단 최우수 사진 편집인상 수상’, ‘전미국 해외기자단 최우수 취재상 수상’, ‘고등학교 시절 최연소 개인 사진전 개최’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사진 저널리스트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중학생인 그에게 사진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아버지는 잊지 못할 숙제를 내주었다. 사진기가 어떤 마술을 부리는 지를 알아보라는 것. “지금도 대답은 같습니다. 사진기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매직박스죠.” 이때부터 ‘매직박스’와 함께하는 그의 여정은 시작된다.
우리대학교 심리학과에 진학한 그는 지금도 우리대학교의 진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아름다운 캠퍼스가 기억에 남는다고. “특히 공강시간에 뒷동산에서 팔배개 하고 소나무 사이로 하늘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죠.” 그는 “당시 연세대학교는 머리가 트이고 여유가 있고 멋을 아는 학생들만이 다니는 곳”이었다며 연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한 것은 일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뿐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이다. 자유와 독립을 찾아 간 미국 땅. 그러나 그곳에는 험난한 미국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싼 식빵을 하나 사서 며칠 동안 먹어야 하고, 낮에는 공부하면서 밤에는 일하느라 화장실에서야 잠깐 동안 잠을 청할 수 있는 고된 생활의 연속이었다. 당시 그의 허리사이즈가 25인치였을 정도라고. 그러나 그에게는 당시의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많이 갖고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니죠. 하나가 필요할 때 더 많은 것이 주어지면 다른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니까요.”
이런 힘든 나날을 딛고 그는 드디어 67년 발행부수 9백만부의 세계유일의 종합문화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입사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의 노력은 그칠 줄 몰랐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는 취재거리가 주어지지 않는 입사 초기에도 스스로 공부해서 취재거리를 만들었다고. 그가 삼엄했던 냉전시대에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내 유서까지 미리 써놓고 서방세계 최초로 북한을 취재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중국 취재를 위해 빗속에서 중국대사를 몇 시간씩 기다리고, 애리조나 선인장 도둑을 사진에 담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고, 사진기자이지만 더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혼자서 편집도 공부했다. 이미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암실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경찰서장을 설득했을 때부터 이러한 그의 생활 철학은 시작됐다. “슈퍼맨의 망토 없이도 나는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죠. 바로 내 진심을 상대방이 알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확신입니다.”
그는 “사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호기심과 경험을 나누는 일이 보람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애정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란다. “피사체와의 교감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못느끼는 법이죠.” 따라서 철저히 피사체의 입장에서 사진을 찍어 취재대상이 사진 속에서 말하게 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한 분야에 일가를 이뤘다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에게도 훌륭한 부모와 스승이 있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어내준 아버지와 중학교 시절 “작은 것은 크게 큰 것은 작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 스승,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힘이 돼 준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단다. 그는 “쓰러지고 싶을 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긍지, 그리고 오랫동안 간직했던 나의 꿈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꼭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기 위해 도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전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힌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요즈음 그는 다큐멘터리 월간잡지인 『GEO』 편집장, 우리나라를 해외에 홍보하는 ‘HEK 홍보기획 공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신방과에 교수로도 출강하고 있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지만, 그는 “다음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모여사는 곳을 직접 취재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미래는 현재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실에 충실하면 미래는 자기 맘대로 만들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해 급급하면 현재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에스닉한 팔찌에 캐주얼한 양복을 입은 그의 젊은 모습, 바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젊음과 자신감에 벅찬 떨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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