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유령』을 볼까 말까. 혹시 그냥 『크림슨 타이드』의 줄거리를 베끼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미화시킨 영화가 아닌가 궁금했다. 지난 98년 MBC 방송국이 일본 후지 텔레비전의 ‘러브 제네레이션’을 표절한 ‘청춘’을 제작했을 때가 생각나서 보기를 주저했다. 여하튼, 한국 영화산업과 스크린쿼터제(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제도)의 투쟁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마음먹고 보러 갔다.
『유령』을 보면서 『크림슨 타이드』와 참 다르고 주제의 전개가 신선하다고 느꼈다. 『크림슨 타이드』에서는 잠수함장이 단지 열쇠 두 개로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대규모의 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권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령』에서는 만약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강대국들이 그 핵무기를 넘겨주라고 요구할 때 한국의 반응이 어떻게 될 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민병천 감독은 잊을 수 없는 제작 스타일로 잠수함 내와 심해의 장면을 묘사했다. 잠수함 내부는 지옥같이 붉은색을 배경으로 하고 싸늘한 파란색 네온 레이더를 등장시켜 좋은 대조를 이룬다. 지상에서 사라진 승무원들이 유령의 배에서 다시 탄생하여 마지막 임무를 완료하도록 하는 주제도 아주 신선했다.
『쉬리』가 『타이타닉』을 침몰시켰을 때부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요즘 『유령』같은 영화를 제작하는 젊은 감독들이 쉬리가 가진 원동력에 힘입어 본격적인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오도록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쉬리』와 『유령』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긴 봤지만 한편으로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의 스타일과 기법을 모방하는 것은 영화 기법 중의 한가지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식 헐리우드 영화를 개발하는 것은 미봉책이라고 생각한다. 모방하는 것보다 한국의 맛을 표현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어떨까? 사실 『유령』 같은 영화를 수출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결과가 좋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할리우드식 영화가 보고 싶으면 사람들은 그냥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를 볼 것이다. 삼국시대에서 유래한 영화가 어떨까? 아니면 기존의 제작방식에서 탈피하여 제작된 6·25에 관한 영화는? 한국의 맛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생생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만든다면 한국인과 외국인, 너나할 것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에 찬 마음으로 보고 싶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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