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시 부문) 심사평

정 명 교


구자창의 「무덤의 시간」은 의식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관념이 강해 묘사가 자유롭지가 못했다. 김채민의 「똑똑한 거지 공방」은 스마트폰을 통하여 쏟아지는 말의 홍수라는 오늘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예리한 풍자로 읽을 수 있다. 비판적 인식을 굳이 시로 쓸 때의 필연성을 더욱 고민했으면 한다. 박시현의 「화장」은 삶의 사건들을,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의 이분법으로 단순화시켜 감정을 고양시킨 후, 같은 단어의 다중적 의미를 통해 그 감정에 미묘한 그늘들을 입히고 있다. 이런 기교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발전하려면 시야와 사색이 필요할 것이다. 「별 헤는 밤」 등 장효정의 시들은 삶의 세목들에 대한 섬세한 느낌들이 돋보였다. 그 느낌 너머의 세계가 유기적으로 펼쳐지지는 못했다. 「창경궁의 대취타」 등 한지혁의 시들에선 일상에 대한 관찰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긴밀하게 맞물리고 있었다. 다만 그 연결이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어, 생각이 경색될 위험이 있었다. 「응시의 법칙」, 「표류기」 등을 투고한 배희원의 시들은 도시적 일상의 진부함과 탈출욕망을 꽤 감각적으로 그려냈으나 반짝이는 이미지와 어색한 이미지가 뒤섞여 있었다. 최지은의 「가장자리」는 서민 가장의 삶의 간난함과 위태로움을 언어의 의미론적 변이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었다. 심사자는 배희원과 한지혁과 최지은, 세 사람을 놓고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최지은의 시가 단순성의 반복을 삶을 이겨내는 생동하는 리듬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자에게 축복을, 투고한 모든 이에게 격려를 보낸다.

 

2011학년도 연세문화상(박영준 문학상-소설 부문) 심사평

성 석 제


16편의 투고작은 의외로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생활이나 청춘의 고민처럼 생활에 밀착된 것들이 다수이긴 했지만 성형수술, 이혼, 첩보 스릴러, 다문화가정처럼 성인의 일상에서 나온 소재도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조금은 떨어진 것에 대해 쓰는 것은 약간은 모험이다. 또한 잘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가질 수도 있다. 면밀한 사전 준비 없이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소설을 써나갈 위험성 또한 없지 않다.

적절한 수준에 올라 있는 두 작품을 두고 오래도록 망설였다. <뫼비우스의 덫>은 농촌 노총각에게 베트남에서 시집온 신부, 월남전에 참전했던 시아버지, 전쟁의 잔학상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초반 전개가 탄탄하고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삶, 과거의 세부를 그런대로 잘 잘려내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그런데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독자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듯 갈수록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현실이 환상으로 이탈해 버린다는 게 문제이다. 애써 구축했던 설득력이 날아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혼사유서>는 성형수술로 수술을 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여성의 입장에서 남편의 속물성과 위선, 범죄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독백체이므로 잘 읽히고 이야기 전개에 활기가 있으며 언어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형수술에 관련된 부분은 마치 물오른 나무처럼 디테일이 뛰어나고 매력적이다. 반면 줄거리의 전개와 결말이 예상을 뛰어넘지 못하고 쉽게 끝나는 느낌을 주는 게 약간은 아쉽다.

생각 끝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기본이 탄탄한 <이혼사유서>를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앞으로도 우리 삶의 범용성을 갱신하는 신선한 작품을 보여주기 바란다.

 

2011학년도 연세문화상(오화섭 문학상-희곡 부문) 심사평

이 경 원


올해 연세문화상 희곡부문의 유일한 출품작인 <당연한 세상>은 한 마디로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극작술이 미흡한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이슈 중의 하나인 동성애 문제를 독특한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요즘 드라마나 문학 작품에서는 대개의 경우 이성애중심주의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현실에서 성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소외를 다루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이성애(억압)와 동성애(저항)라는 공식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동성애를 일상화된 억압적 현실로 그리고 이성애를 피억압자의 유토피아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낯익음과 낯섦 혹은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 경계선을 허무는 프롤로그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다. 본극에서도 작가는 이성애자들을 타자화하는 동성애중심주의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면서 섹슈얼리티의 차이가 어떤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며 담론의 효과임을 항변하고 있다. 상당히 흥미롭고 창의적인 주제다. 하지만 아쉬운 건 이 작품의 형식과 구성이다. 일단 너무 풀어쓴 대사가 거슬린다. 시종일관 대사가 장황하고 반복적이다 보니 독자는 TV연속극 시청자처럼 다음 장면과 대사가 무엇일지 충분히 예상하게 된다. 압축과 함축이 부재하는 산문체 대사가 연속된다. 그리고 비극적 파국으로 치닫는 본극 다음에 첨가된 에필로그도 다소 진부한 느낌을 준다. 동성애와 이성애의 화해와 공존을 암시하는 유토피아적 결말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나을 뻔했다. 전반적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욕구가 너무 강하다보니 희곡이란 장르의 특성인 절제와 여백의 미학을 잃어버린 작품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27쪽의 분량을 절반으로 줄였더라면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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