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거품을 뿜어내며 끓고 있는 물 위로 잘게 썰린 레몬이 춤을 춘다. 투명한 유리잔에 드라이아이스 한 줌을 넣자 레몬향을 머금은 구름이 펼쳐지고, 그 위로 바텐더의 현란한 쉐이킹이 곁들여진다. 또 하나의 칵테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해발 2천 3백미터에서 숙성하는 술 'Zacapa'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이 칵테일은 고산지대의 신비로운 구름을 유리잔 위에 띄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로 지난 2011 월드클래스 바텐더 대회 국내 1위를 수상했던 창작 칵테일 'above the cloud'이다. 이 미지의 세계를 담은 칵테일은 W호텔 woobar의 이민규 바텐더에 의해 탄생했다.

 


국내 최정상급의 바텐더인 이씨가 처음부터 바텐더의 꿈을 꾼 것은 아니다. 식음료에 관심이 많고, 주방일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던 그는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막연히 호텔 업계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호텔의 다양한 업무 중 하나인 바텐더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이니만큼 바텐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특별한 자격증이나 시험은 없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본 기술은 간단하고 그 수도 적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칵테일의 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 바텐더는 그러한 고충을 담아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바로 술”이라고 표현했다.


술 자체가 어려운 만큼 훌륭한 바텐더에게 필요한 것은 칵테일을 만드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이해’다. 따라서 술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가 함께 요구된다. 술은 인류의 역사와 발걸음을 같이 한 만큼 그 역사가 매우 길다. 미국의 금주법이나 세계대전 같은 독특한 배경 하에 만들어진 다양한 술, 각 나라의 전통주 등 공부할 내용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기본 지식이 바탕이 돼야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동시에 기발한 상상력으로 칵테일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렇게 탄생한 칵테일에 이름을 붙이는 것 역시 술의 이미지 형성의 핵심이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이씨는 그러한 자신의 재치가 가장 잘 스며든 칵테일로 한국 대표로 출전한 2011 월드 클래스 세계 대회(이하 세계 대회)에서 만든 작품인 'fiammato martini'를 꼽았다.


세계 대회의 미션은 인도 전통 시장에 있는 다양한 향신료들을 이용해 바텐더 자신만의 칵테일을 창작해내는 것이었다. 이씨는 매운 고추를 유리잔의 바깥에 꽂아 음료에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매운 맛이 느껴지는 새로운 형태의 칵테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강렬한 맛과 빨간 고추를 상징하는 불꽃이란 의미의 이태리어 'fiammato'를 칵테일의 이름으로 붙였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음료에 향신료를 가미하는 기발함 덕분에 그는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칵테일 제조 외에 바텐더가 생각하는 바텐더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바텐더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람들과의 유쾌한 대화를 꼽았다. 바텐더는 기본적으로 바에서 음료를 제공하는 사람이지만 이와 동시에 손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는 “바에 오는 손님들은 대개 취하러 오는 게 아니라 술을 즐기기 위해 온다”며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들을 위한 칵테일을 만들다보면 나 역시 즐거운 기운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칵테일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신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유쾌함을 나누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칵테일은 흔히 가격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가치를 마시는 문화로 예찬된다. 추운 겨울, 찬바람으로 지친 심신을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정성스러운 칵테일 한 잔으로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최혜원 기자 hellofriday@yonsei.ac.kr
유승오 기자
steven10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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