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문이 좁아지면서 대학사회에 ‘공무원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시절 과도한 스펙 쌓기와 학점경쟁을 해가며 취업한 후에도 불안정한 직장 생활을 할 바에는 안정적이고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하겠다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서울시 7·9급 공무원 시험의 경우 1천88명 모집에 8만 8천240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81대1을 기록했다. 이렇듯 공무원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 공무원 사회는 1급부터 10급까지 나눠진 ‘계급사회’라는 슬픈 이면을 가지고 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사무관부터 시작하는 5급 공무원과 국가직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해 서기로 시작하는 9급 공무원 사이에는 이른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사회적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격차를 극복하고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1급 공무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박찬욱 전(前) 서울지방국세청장이다. ‘9급 신화’라 불리는 박 전 청장에게 그의 인생 얘기를 들어봤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서다

9급 세무공무원에서 1급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자리까지 오른 박 전 청장의 화려한 이력 이면에는 암울했던 유년 시절이 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바로 전 해인 1949년에 경기도 용인군의 가난한 산골농촌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부친을 여의면서 그는 모친, 조부모와 함께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불우했던 유년 시절이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 때 당시는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특별히 고생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역경을 이겨내며 자라온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사정이 어려워 국립대를 지망했지만 결국 대학진학에 실패했다. 좌절한 상태로 이듬해를 기약하고 있던 그의 눈에 띤 건 신문에 실린 9급 세무직 공개채용 공고문이었다. “시험일까지 약 1개월 남은 상태였는데 공고문을 보며 과연 내가 가야할 길인지를 고민하면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응시원서를 접수해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결국 그는 9급 세무직 공무원에 합격해 1968년 고향근처인 수원세무서에 첫 발령을 받게 됐다. 이렇게 그 당시 결심이 공직에 입문해 40년 가까이 세무공무원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9급 세무공무원에서 1급 국세청장까지

9급 세무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해 공직을 시작한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승진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던 것도 바로 주경야독 덕분이었다. 그는 6급 공무원 당시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공직과 공부를 병행하기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때는 최근처럼 시험이 아주 어렵지 않았지만 근무하면서 틈틈이 시험을 준비하다보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상사와 동료들에게 많은 폐를 끼쳤는데 업무처리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세무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인사고과에서 우대돼 사무관 승진시험을 상대적으로 빨리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는 1983년 만34세에 사무관승진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에 그는 “세무사자격을 취득하고 이를 통해 사무관 승진시험에 기회가 왔을 때 실패하지 않았던 것이 이후 승진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일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평균 11년이 걸리는 서기관 승진을 9년 8개월 만에, 평균 10년이 걸리는 부이사관 승진을 8년 만에 이뤘다. 지난 2005년 4월에는 국세청 조사1과장에서 서울청 조사4국장으로 승진했다. 과거 서울청 조사4국은 청와대 특명조사국으로 국세권력의 상징이었지만 2003년에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직원들이 구속되는 불명예를 얻게 된 곳이었다. 그는 조사4국장으로 임명된 후 유흥업소, 사채업자 등 까다로운 세무조사를 도맡아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조직 전반에 신뢰를 쌓으며 조사4국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후 그는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등 탁월한 업무성과를 보여 조사국장을 거쳐 서울지방국세청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약 39년 만에 1급 공무원 자리에 오르며 9급 신화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1급 공무원에 오를 수 있었던 진짜 비결

“공무원 특히 국세공직자라면 누구나 공사구별을 분명히 하고 전문분야 지식과 능력 배양에 힘쓰기 때문에 그런 쪽에 제 자신이 남다른 노력을 더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1급 공무원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 본인의 노력보단 함께 동고동락했던 직장동료와 선후배들의 보살핌과 배려를 꼽았다. 이처럼 그는 특유의 겸손함으로 조직 구성원의 신뢰를 쌓으며 조직을 이끌어나갔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자’라는 좌우명을 공직 생활 중 항상 마음속에 지녔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좌우명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탁월한 업무 성과를 이루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조직에서 신뢰를 쌓으며 1급 공무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성실한 공직수행을 했음에도 그는 자신의 공직생활을 평가하자면 60~70점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세청 직원의 주 업무가 세금의 부과와 징수이기 때문에 업무특성상 납세자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마주쳐온 납세자들을 보다 더 깊게 설득하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친절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분들이 당시 얼마나 아쉬워했을까 하는 미련이 많이 남습니다. 또 함께 근무했던 많은 동료나 부하 직원들에게 과연 내 책임을 다하면서 업무지시나 독려, 때로는 질책을 제대로 한 것인지 자신이 없습니다.”

공직에서 은퇴한 현재 그는 자신이 태어난 정평마을의 이름을 딴 ‘정평장학회’를 설립해 불우한 하위직 세무공무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공직자로서 국민에게 봉사했던 그는 은퇴 후에도 어려운 사람에게 봉사하며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9급 신화’가 대학생에게 전해주는 조언

1968년에 9급 세무공무원으로 출발해서 약 39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일반직공무원으로서 최고위자리인 1급까지 지낸 그는 많은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에 더 없이 큰 복이었다고 했다.

약 39년간 공직생활을 해온 그는 곧 사회에 진출하게 될 대학생들에게 후회 없이 공부하고 심신단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사회에 나간 후에는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의 실력과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을 때 어렵고 중요한 일을 맡게 될 것이며 결국 회사와 상사로부터 선택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직사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에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국민의 모범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공사를 구별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갖춰야 합니다. 조직 내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자세를 꼭 갖추도록 하세요.” 

박찬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의 9급 신화는 오늘날 학벌주의, 학연지연, 계급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대학생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박 전 청장의 인생에서 알 수 있듯이 훗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오히려 대학생들이 지녀야 할 최고의 스펙이 아닐까.

이가람 기자 riverboy@yonsei.ac.kr
사진 유승오 기자 steven101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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