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브랜드 CLIO 한현옥 대표이사를 만나다

뽀얀 얼굴, 또렷한 눈매, 빛나는 입술.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끝이 없다. 신비로운 화장의 마법은 그런 욕망조차도 사랑스러움으로 변화시킨다. 그리스어로 ‘찬양하다’를 뜻하는 'CLIO'는 이러한 여성들의 욕망과 아름다움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노란색 바탕에 날개짓 하는 나비 문양으로 상징되는 화장품 브랜드 CLIO. 김하늘 립스틱, 이효리 아이라이너로 더 잘 알려진 CLIO의 중심에 자기 색깔이 분명한 여자, 대표이사 한현옥(사회·78)동문이 있다.


한 대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3년에 ‘전문색조화장품’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업을 시작해 CLIO를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시켰다. CLIO는 당시의 다른 국내 화장품 회사와 다르게 아웃소싱(Outsourcing) 방식을 택했다. 제조를 국내에서 하고 브랜드를 해외에서 빌려오던 기존 회사들과 달리 해외 유수 제조업체가 제품을 생산하면 CLIO가 상품 기획과 마케팅, 유통·관리를 담당하는 식이다. 한 대표는 회사를 창업하던 당시를 해외 화장품 브랜드들이 밀려들어오는 격동의 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죠. 브랜드를 수입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 결국 국내업체가 넘볼 수 없는 고급 재료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죠.”

 

한 길에서 만나다

 

지금이야 성공한 여성 CEO지만 한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의 길만 보고 걸어온 것은 아니다. 화장품 회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의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 석사 학위를 땄고, 그 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 분석에 관한 연구원으로 일했다. 리서치회사에서 마케팅 조사와 시장 조사를 담당하다 중간에 강사 일도 했고, 유통 업체에 들어가 조직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일들을 했지만 결국에는 회사를 경영하는 지금, 거짓말처럼 모든 경험이 도움이 돼요”라고 말한다.


도대체 그토록 다른 직업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한 대표는 “사회학을 공부한 덕분에 어떤 현상을 볼 때 부분보다는 구조로써의 전체를 보게 됐어요. 이런 관점은 조직을 끌고 가는데 정말 중요해요”라고 답했다. 또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화장품 산업이 차별성만 잘 살리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때의 지식이 후에 사업을 선택하는 밑바탕이 됐다. “강사일과 조직 생활에서는 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이나 재무, 회계와 같은 실무적인 내용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한 대표. 어느 한 곳만 보고 달린 것도 아닌데 결국에는 그 모든 노력과 고민들이 한 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청춘을 채운 춘추

 

이처럼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즐겼던 한 대표는 가장 소중한 청춘인 대학 시절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대학시절 하면 연세춘추 기자로 활동했던 시간밖에 떠오르지 않아요”라며 살짝 웃었다. 이쯤되면 화장품 CEO로 살아가는 데 전혀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기자 경험도 과연 도움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한 대표는 두 가지는 확실하게 배웠다고 답했다. “기자생활의 핵심은 일단 기획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사를 계획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모든 과정을 나 스스로 해야 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기획능력을 쌓을 수 있었죠.” 보람차고 즐거웠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힘들고, 괴로운 일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중요한 것을 배웠다. “당시 편집회의가 정말 신랄했어요. 이런 것도 기사라고 써 왔냐, 이 기획은 쓰레기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죠. 그렇지만 덕분에 사람이 단단해지더라구요.” 한 대표는 지금도 업무에 대한 비판에 상처입지 않는다. “비판에서 배워야할 것은 분노가 아니라 반성이라고 믿어요.”

 

신뢰에서 해답을 찾다

 

그렇지만 한 대표가 회사를 키워내기까지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대의 위기는 IMF 때 찾아왔다. CLIO의 사업 기반이 아웃소싱이다 보니 해외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환율은 평소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해 회사의 재정 상태를 죄어왔다. 주변 회사가 하나씩 부도나는 위기 상황, 그러나 한 대표는 그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얻었다. 환율로 인해 수입 부문에서의 손해가 막심했지만, 시장에서의 소비는 꾸준하게 계속 됐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우리 제품의 질을 믿고 선택하는 소비자들을 보면서 진심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협력업체들의 지원도 많은 도움이 됐다. 한 대표는 회사의 재정 문제를 숨기기보다 오히려 솔직하게 밝혔고, 현실적인 상환 계획을 짜서 보내 협력업체의 신뢰를 얻어냈다. 결국 많은 협력업체들이 결제시점을 늦춰줬다. 모두가 무너졌을 때 한 대표가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신뢰 덕분이었다.

 

화장품이 가르쳐준 혁신의 비밀

 

반성과 신뢰는 기본, 한 대표가 CEO로써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바로 혁신을 통한 감동이다. 그는 화장품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매체라고 믿고 있다. “펜슬 아이라이너가 좋다는 의미를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한 대표는 웃으며 설명했다. “부드럽게 발리고 오래가는 펜슬을 말하겠죠. 그렇지만 오래가는 펜슬은 딱딱해요. 부드러운 펜슬은 금방 번져 눈 주변이 판다처럼 되곤 하죠. 여성들은 언제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해요. 그렇지만 부드러우면서 오래가는 펜슬이 있다면요? 그게 바로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 장점이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여도 혁신은 그 둘이 결합한 가운데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것을 처음 시작하는 것 역시 혁신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아트 마케팅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것도 한 대표다. “블러셔나 립스틱 같은 화장품을 사용한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실제 작가의 이미지를 제품 속에 넣었죠.” 처음에는 화장품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개념이 생소할뿐더러 상업성에 대한 예술인들의 부정적인 고정관념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기존의 재료만으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아름다운 색을 화장품이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8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미래를 만드는 오늘

 

삶 자체가 혁신의 연속이었던 한 대표는 어떤 일이 미래에 도움이 될지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는 대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다른 어른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소리, 하지만 한 대표의 말이기에 특별하게 다가온다. “지금 책 한 권 읽는다고 내 미래가 달라질까? 여행 한 번 간다고 뭐가 달라져? 의심스러울 거예요. 그러나 저는 달라진다고 확신해요. 어디에 쓰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도 결국에는 한 길에서 만나게 되거든요.”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던 일들이 모여 결국에는 CEO로서의 한 대표를 만들어냈듯 그는 오늘 하루도 미래의 커다란 한 부분이 될 것이라 믿고 자신만의 시간들을 쌓아가고 있다. 

 

최혜원 기자  hellofriday@yonsei.ac.kr
사진 유승오 기자 steven103@yonsei.ac.kr
자료사진 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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