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을 보기위해 박물관에 가는 시대는 지나고 이젠 미술이 제 발로 거리로 나왔다.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홍대지역 일대에서는 ‘홍대 앞 거리미술전’(이하 거미전)이 열렸다. 올해로 19살이 된 이번 거미전은 대중이 일상적으로 거닐던 거리에서 예술을 만나고 가볍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거미전 기획단은 ‘19’란 숫자 모양과 닮은 기호인 느낌표와 물음표를 묶어 ‘!?’(느낌을 묶다)라는 표어를 만들어 냈고, 이에 맞게 다양한 느낌의 기획전을 선보였다.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예술의 현장

 

이번 거미전의 매력은 다양한 미술 행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행사는 ‘토핑으로 서로를 그려봐!’였다. 여기서는 마요네즈, 케첩 그리고 간장으로 서로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볼 수 있었다. 홍대 거리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팔레트에 짜인 각종 식재료를 붓에 묻혀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고 있었다. 전시기획팀장 김수정(23)씨는 “보통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물감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떠한 재료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일상에서 자주 보던 음식 재료로 직접 그림을 그려봄으로써 예술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색안경을 쓰고 크레파스 색깔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림을 색칠해 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어떤 사물은 꼭 이런 색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없애주는 체험이었다.

 

이런 예술 작품 본 적 있니?

 

늦은 밤이 되자 홍대 정문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됐다. 영화관 스크린처럼 홍대 정문의 외벽에 다양한 영상들이 비춰졌다. 건물의 외벽을 도화지 삼아 다양한 영상을 선보이는 ‘파사드 아트’로 인해 단지 회색빛 벽돌이었던 홍대 정문은 영상과 함께 전혀 다른 질감과 움직임을 부여받아 새롭게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의 주제인 ‘!?’처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영상들이 광장 바닥에서 음악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신기해하며 영상에 맞춰 스탭을 밟기도 했다. 이를 구경하던 홍익대 최인규(24)씨는 “‘알다가도 몰라’라는 영상제목처럼 이 영상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그러나 이렇게 일상적인 길바닥이 스크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홍대 정문 앞에서는 오대호씨의 거대한 ‘태권브이’ 조형물이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세례를 받고 있었다. ‘태권브이, 홍대를 날다’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는 “지금 내 앞에 네가 없다면 난 그저 무거운 쇳덩어리에 불과해, 내게 힘을 줘”라는 의미심장한 작가의 말이 덧붙여 있었다. ‘때밀이 수건’으로만 만들어진 작품이 있는가 하면 버려진 쓰레기와 그에 얽힌 사연이 함께 걸린 이색적인 전시도 있었다. 숙명여대 고유정(20)씨는 “휴지통에 들어가면 그뿐일 쓰레기가 이렇게 사연이 담긴 전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며 소지하고 있던 쓰레기를 작품 한편에 걸어놓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담배 곽에 ‘국어공부하다 짜증나서 담배 샀음’이라고 적혀있는 재수생의 가슴 아픈 사연이 걸려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길

 

이처럼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진 이번 거미전은 1년이 넘도록 기획을 준비해온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 전시의 기획단은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만 이뤄져 있다. 이들은 어떤 대가도 없이 오직 홍대 앞거리에 대한 사랑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으로만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해왔다. 이번 거미전의 전시 기획단에 1년 동안 참가했던 우리대학교 김정운(경제·11)씨는 “전시를 기획하며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작은 부분이 보여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시간의 노력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전시기획이라도 중간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김씨는 “전시 당일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한마디씩 좋은 말을 던지고 가는 순간 쾌감을 느꼈고 그 말을 듣기위해 전시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큰 ‘대가’인 것이다.


일상적인 ‘거리’와 비일상적인 ‘미술’은 이렇게 홍대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미술은 점점 우리의 일상에 발을 들이고 있다. 모든 대중이 미술을 ‘비일상’이 아닌 ‘일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그 날까지 홍대 앞 거리미술전은 계속될 것이다. 

 


김기윤 기자  munamuna@yonsei.ac.kr
사진 정세영 기자 etoiledeto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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