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하일권을 만나다

조금은 피곤해 보였다. 웃으며 인사를 건넨 그는 생각했던 이미지와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작가가 만화 속 때밀이들처럼 미남일 거라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그는 어딘가 모르게 ‘만화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이 그에게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만화를 닮아간다’고 바뀐 것처럼. 웹툰 작가 하일권(30)씨의 이야기다.

‘하일권’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쯤은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데뷔작인 『삼봉이발소』부터 시작해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목욕의 신』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웹툰계의 든든한 한 기둥이다. 웹툰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그는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만화에 웃고 눈물짓고 공감하는 만화를 그려왔다.

 

생각지도 않았던 만화가의 길 


하지만 하 작가가 처음부터 만화가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만화를 좋아하고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미술을 진로로 삼은 것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대학은 가야겠는데 성적은 낮고, 미술선생님이 미대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라며 하 작가는 멋쩍게 웃었다. 대학에 지원하면서도 대부분 만화와 관련이 없는 시각디자인과에 원서를 넣었다. 결국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재미있을 것 같았고, 당시에 애니메이션이 전도유망한 산업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대와 휴학으로 4년 동안 학교를 떠난 사이에 애니메이션 시장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진로가 정말 막연해진 상황에 그는 ‘학교를 그만둬야 하나’하는 고민까지 했다.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웹툰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재미있겠다’고 느낀 또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그 후 소재를 구상하고, 습작을 하며 ‘웹툰 작가 하일권’으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하루에 14시간, 일주일에 7일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2006년 데뷔작 『삼봉이발소』를 발표했다. 하지만 웹툰 작업과 학교생활을 함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즘에도 하루에 14시간씩,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작업을 한다는 그는 “심지어 주7일제”라며 만화 그리는 일을 ‘몹쓸 짓’이라고 표현했다. 전업만화가로 활동하는 지금도 힘들게 소화하는 일을, 학업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겼다. 공강마다 그림을 그렸고, 주말은 작업실에서 보내야 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총 조회수 1천만 회를 훌쩍 넘겼던 인기 웹툰 『삼봉이발소』였다.

 
그 후로도 해마다 새로운 웹툰을 독자들에게 선보여 왔다. 한 작품을 연재하는 데 7~8개월, 여기에 준비기간이 3~4개월이라고 하니, 쉬지 않고 만화만 그려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웹툰 작가로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다지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감에 쫓기다 보니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작품을 내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잊힐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3단합체 김창남』에서 로봇 ‘시보레’에게 입력돼 있던 만화가의 정의가 떠올랐다.(아래 그림 참조)

 
일 때문에 훌쩍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하 작가에게 여행은 가장 큰 취미다. “여행을 굉장히 좋아해요”라고 말할 때 높아지는 목소리를 통해 그의 여행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묻자, 그는 “프랑스”라고 답했다. “예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에 더해, 만화가 하나의 예술로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란다. 결국 만화 이야기다. “달리 할 줄 아는 게 만화 밖에 없다”며 겸손히 말하지만 만화가 그의 삶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삶=웹툰=삶'


작품들 역시 그의 삶을 담고 있다. 웹툰을 처음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때그때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을 그려왔다는 하 작가. “저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만화가는 아니에요”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는 다들 알고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소중한 것들’을 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내 모습을 닮아있다”고 그는 말했다. 캐릭터들은 작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지인들의 모습을 조금씩 녹여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또 다른 이유는 ‘표현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에 따라 배경 음악을 깔거나, 사진을 차용하는 등의 표현법을 사용한다. 그는 “작품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연출들을 시도해 볼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작가가 생각하고 느낀 바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에 담아내고, 거기에 걸맞은 연출로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하하하 웃고 끝내버렸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왜 감성적인 작품들만 해 왔는지 모르겠어요”라는 하작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등장인물들이 죄다 심각하다보니 자신도 따라서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원래는 개그만화를 제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그. 그래서 이번 『목욕의 신』은 ‘그리고 싶은 걸 그린’ 개그만화다.

목욕의 신 ‘테미러스’의 손을 가진 주인공 ‘허세(23)’가, 도심에 위치한 피라미드 모양의 목욕탕 ‘금자탕’에서, 상금 3억(과 고품격 크리에이티브 중형세단)이 걸린 목욕관리사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연습용’이라고 쓰여 있는 수영복을 입고, 때밀이 시합인 ‘목욕투’를 벌이는 이 만화, 웃지 않으래야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독자들이 『목욕의 신』에서 메시지를 찾기보다는, ‘그저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침에 찜질방에 갔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로 시작한 만화이고, ‘귀찮음과 마감시간 때문에’ 간단한 피라미드 모양의 금자탕을 그렸으며, ‘잘생기면 보기 좋다’는 상업적인 마인드에서 미남미녀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개그만화인 것, 그 뿐이다.


마치며


‘재미있는 만화가 가장 좋은 만화’라고 말하는 하 작가. 그 동안 그의 작품들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도 결국은 재미 때문이다. 하지만 하 작가는 “예전의 작품들을 보면 부족한 점이 보여 너무도 부끄럽다”고 털어놓는다. 작품에 담아내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정 하고 싶은 것일 뿐 한 번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며 선을 긋는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라면서. 하지만 그 뒤엔 새로운 이야기를 더욱 참신한 방법으로 그려내고 싶은 ‘웹툰 작가 하일권’의 욕심이 보인다. 앞으로 얼마간은 ‘재미있는 웹툰’의 가뭄이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박정현 기자 jete@yonsei.ac.kr
사진  배형준 기자
elessar@yonsei.ac.kr
자료사진 하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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