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만 5천600분의 행복한 순간들, 당신은 한 해를 무엇으로 재고 있는가? 여기에 한 해를 사랑으로 재는 젊은 영혼들이 있다. 뮤지컬『렌트』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동네인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삶을 노래한다. 그들 중 단 한명도 평범한 사람은 없다. AIDS 환자, 동성애자, 마약중독자. 누군가의 눈에는 어쩌면 인생을 포기한 낙오자들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내일을 열정적으로 꿈꾸며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음악가 로저는 애인을 AIDS로 떠나보내고, 자신도 AIDS에 걸려 죽음의 공포 속에 떨면서도 영원히 기억될 노래 한 곡을 쓰기 위해 헤맨다. 전기마저 끊긴 어두운 집에서 홀로 작곡을 하던 그에게 거리의 댄서 미미가 찾아온다. 첫눈에 로저에게 반한 미미는 손을 내밀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이기엔 로저의 마음 속 어둠이 너무나 짙다. 다른 날에,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뜨거운 체온으로 깊은 포옹을 할 수도, 사랑의 시를 노래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아니라는 로저. 그러나 미미는 오늘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순간의 소중함을 전하려 한다.

‘오늘 말고 다른 날에.’ 우리가 일상에서 정말 자주 쓰는 말이다. 가족에게, 애인에게, 친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을 내뱉곤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귀찮거나 오늘은 왠지 내키지 않아서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흘려보낸 오늘이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하루일 수도, 평생의 소원을 하루 앞둔 날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각한다. ‘다른 날에 하면 되지.’ 과연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또 찾아올까? 로저와 미미의 친구이자, 동성애자 커플인 콜린과 엔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엔젤이 AIDS로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도 둘은 매일 노래하고 춤을 춘다. 내일 다시 눈을 뜨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서로에게 보내는 ‘천번의 키스’만 있으면 깨끗이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엔젤은 세상을 떠나고, 로저는 미미를 사랑하게 됐음에도 오해로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 후로 로저는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귀에 맴돈다. 작품의 후반부 마약중독으로 죽어가는 미미를 본 순간, 로저는 깨닫는다. 미친 듯 찾아 헤맸던 그의 노래가 바로 미미였음을. 그리고 그토록 하찮게 여겼던 그녀와의 하루가 다시 주어진다면 죽어도 좋다고 울부짖는다. 연인의 죽음 앞에서 오늘의 소중함의 절실하게 느끼는 로저에게서 바보 같은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아픔의 순간이 다가와서야 우리는 ‘단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을 외친다. 그 외침은 언제나 허망하게 사그라들기 마련이지만, 이 연인들에게는 또 다른 오늘이 기적적으로 찾아온다. 죽어가는 미미의 꿈 속에 죽은 엔젤이 나타나 ‘돌아가서 다시 로저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속삭이고, 그녀는 깨어난다.

뮤지컬 『렌트』의 극작가 조나단 라슨은 1996년 1월 25일 프리뷰 전날 밤, 찻잔에 물을 따르다 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모든 열정과 혼을 담은 뮤지컬의 막이 오르는 순간을 보지 못하고 하루 전날 눈을 감은 것이다. 그에게 그 하루는 또 얼마나 중요한 내일이었을까? 조나단 라슨에게 단 하루의 시간만 주어졌더라면, 그는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인생의 역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시간을 무엇으로 재고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당신의 오늘이 궁금하다.

 

최혜원 기자  hellofriday@yonsei.ac.kr
자료사진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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