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방엔 법률학 서적이 쌓여 있고 의사의 책상엔 각종 차트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방은 어떨까? 예술가의 온갖 상상력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망원동의 한 작업실, ‘art blender 파랑캡슐’(아래 파랑캡슐)을 찾았다.

이 곳 작업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예술가의 모임인 ‘파랑캡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파랑캡슐은 실험예술과 다원예술을 외치는 일종의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다. 행위 예술가부터 패션, 음악, 회화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 커뮤니티를 꾸려가고 있다. 이들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예술창작 교육을 하기도 하고,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를 선보이는 등 예술인과 비예술인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망원동 파랑캡슐에는 2명의 예술가가 상주하고 파랑캡슐 커뮤니티와 인연을 맺은 예술가들도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것이 꼭 19세기의 파리에서 피카소와 그 무리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작업실 ‘바토 라부아르’를 중심으로 밤새 예술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날도 이곳엔 4명의 예술가가 모여 있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작업실 문을 두드려볼까? 

똑똑똑, 여기가 파랑캡슐 작업실인가요?

‘파랑’캡슐이라는 단어가 주는 푸른 이미지와 달리, 이곳은 여느 자취방과 다름이 없었다. 문은 잠기지 않은 채 열려있고 현관에는 널브러진 신발들이, 부엌에는 작은 텔레비전과 공연에 쓰였던 각종 소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회의를 하는 가장 큰 방에는 새파란 책상 하나가 놓여 있고 벽에는 패러디된 모나리자 그림과 가지각색의 천들이 붙어있다. 이렇게 너저분한 방들은 꼭 피카소의 아틀리에를 연상시킨다. 피카소는 평생을 무질서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지럽혀진 공간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인지, 무질서해 보이는 이 곳에서 그들만의 세계가 탄생하고 있었다.

 

본격 탐구, 예술가의 방

예술가의 관심 장르에 따라 방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사뭇 달라진다. 파랑캡슐의 총책임자 조혜연씨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멀티 예술가다. 그녀의 방은 이런 조씨의 특징을 대변하고 있었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작업대 위의 각종 악기들에서는 작곡가의 모습이, 벽면의 다양한 포스터들과 여러 인용구들에서는 소설가의 풍모가, 서재의 수많은 서적들에서는 예술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관심은 작곡이다. 실제로 조씨는 매일 밤 작곡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2번째 싱글 앨범 『나를 안아 주세요』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행위예술가 기묘경씨의 방문을 열었다. 방의 내부는 핑크색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벽면에는 각종 예술서적들이 즐비했고 책상에는 ‘우주의 비밀’이라고 적혀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잡지가 여러 권 놓여 있었다. 기씨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도 ‘행성’, ‘별’, 그리고 ‘탄생’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평소 ‘우주’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행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들은 저 멀리 우주에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의 방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영감의 원천인 옥상이 나온다. 부엌문을 열고 손잡이 하나 없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별을 볼 수 있는 옥상에 다다른다. 뻥 뚫린 시야에 별을 가리는 인공 불빛도 없어 별이 참 잘 보인다. 이런 옥상에서 매일 밤 영감을 받는 행위예술가 기묘경씨는 “옥상에서 밤을 새도록 혼자 구르기도 하고 비를 맞기도 하고 조명을 쓰러뜨리기도 하면서 1인 비디오를 제작했던 것이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옥상은 파랑캡슐의 예술가들이 종종 모여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별을 보기도 하는 등 수많은 추억이 깃든 공간이라고 했다. 

그 곳, 예술가의 작업실

이렇게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작업실은 주로 홍대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젊은 예술가들의 고향, 홍대 거리가 상업화되면서 작업실들은 비싸진 임대료에 점점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파랑캡슐 역시 상수동에서 망원동으로 옮겨왔다. 조씨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홍대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그렇게 문제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예술가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흐름에 예술행위를 어떻게 발맞춰야할 지 재구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홍대에서 시작된 예술 형식을 이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고, 뛰어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예술가의 진정한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예나 지금이나 창조의 원천이다. 반 고흐나 르누아르의 작업실은 그 자체로 작품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팩토리’(공장)라고 이름 붙여진 앤디워홀의 작업실에서는 코카콜라 병 같은 일상적인 물체가 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지금 이곳 파랑캡슐에서는 21세기 한국에서 비예술인과 예술인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색다른 시도들이 한창이다. 창조와 죽음이 반복되는 곳, 예술가의 집에서는 오늘도 또 다른 작품이 태어나고 있다.


김기윤 기자  munamuna@yonsei.ac.kr
사진 정세영 기자 seyung1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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