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기본 폰트만을 주로 사용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더많은 폰트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 쓸 수 있게 됐다. 남성스러움을 표현하고 싶다면 나눔고딕을, 부드러움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광수체를 사용하면 된다.  이제 폰트 디자인으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다양해지는 폰트 활용기

 

자신만의 폰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큼 사용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폰트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밝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이호 디자이너는 “PPT 발표를 할 때나 특정 목적을 가지고 문서를 작성할 때에 글의 어조에 따라 다른 폰트를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활자 특유에서 전해지는 딱딱함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손글씨 폰트를 선호한다. 손글씨 폰트의 경우 특정 인물의 손글씨를 일일이 스캔해 데이터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타이포그래피서울’의 김수연 직원은 “손글씨는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의 스캔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데이터화를 통해 그 손글씨만이 가진 특징을 중심으로 가장 비슷하게 최적화된 폰트가 디자인된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보면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마케팅 도구로 폰트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은 문서나 웹사이트, 또는 상품 전체에 하나의 폰트를 사용함으로써 높은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카드의 경우 카드의 가장자리를 형상화한 폰트를 사용함으로서 다른 카드회사들과 차별화된 인상을 만들었고, 식품산업을 주로 하는 CJ는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글씨체를 기업의 모든 상품에 적용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목적에서 우리대학교는 연세체를 사용해 연세만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은 폰트를 통해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강조하거나 혹은 아예 새로운 성격을 스스로에 부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전용서체는 폰트 디자이너와 기업간의 충분한 소통 과정이 필요하다. 일단 기업이 원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먼저 설정하면, 그 후에 그에 부합하는 폰트를 디자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디자이너는 “폰트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문화적 가치와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폰트 속 숨겨진 아름다움

 

이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한글 폰트의 특징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조합’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어 폰트는 디자인이 의외로 간단하다. 하나의 단어가 단순히 알파벳의 나열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글 디자인은 초성, 중성, 종성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글자가 나올 수 있다. 때문에 글자를 구성하는 요소를 어떻게 어우러지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온 한글 폰트는 구조적으로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현재 한글 폰트가 가진 가치를 제대로 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전까지 우리가 컴퓨터를 할 때마다 흔히 써왔던 굴림체의 뿌리가 일본 글꼴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디자인연구소’ 박혜진 직원은 “굴림체는 1960년대 일본 디자이너가 만든 나루체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폰트로 한글의 조형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컴퓨터 운영체제가 윈도우 비스타로 넘어가면서 한글의 조형미와 가독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폰트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됐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맑은 고딕이다.


서울시의 서울서체에서도 한글이 가지고 있는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서울서체는 강직한 선비정신과 단아한 여백을 담는다는 목적 아래 한옥의 열림과 기와의 곡선미를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글자 디자인은 그 국가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산돌커뮤니케이션 석금호 대표이사의 말처럼 하나의 폰트가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폰트는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제작 과정 끝에 탄생한다. 한글의 경우 기본적으로 하나의 폰트가 탄생하기 위해 디자인이 필요한 글자 수는 무려 2천 350자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어려움 끝에 탄생하기에 폰트 디자인은 돈으로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 오늘만큼은 무심코 지나쳤던 한글 폰트 디자인이 전하는 가치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최혜원 기자 hellofrida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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