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 보호 VS 대중문화의 표현의 자유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내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바이브’, 「술이야」 중)

“술에 취해 널 그리지 않게 … 나를 달래며 살죠 널 보내고” (‘SM더발라드’, 「내일은…」 중)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위 노랫말은 모두 ‘청소년유해약물 등의 효능 및 제조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그 복용, 제조 및 사용을 조장 혹은 매개’했거나, ‘약물 복용을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유해음반, 즉 ‘19금’으로 판정한 것이다. 19금 판정을 받으면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해당 음반이나 음원을 구입할 수 없고, 밤 10시 이전에는 그 곡을 방송할 수 없다. 올 상반기에만 500여 곡이 무더기로 이런 19금 판정을 받으면서 음악계는 물론, 대중과 언론에서도 판정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현 심의제도는 「청소년보호법 제10조」와 동법 시행령에 의거한 것으로, 여성가족부와 그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아래 청보위)의 주관 하에 ‘모니터 요원의 모니터링 - 9명의 음반심의위원의 심의 - 11명의 청보위원들의 판정’의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청보위 맹광호 위원장은 “가정, 국가,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인 청소년들이 예민한 시기에 건강하고 즐겁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라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심의제도의 모호한 기준과 형평성, 전문성 등에 대해 논란이 불거졌다. 이미 지난 2008년 ‘동방신기’의 「주문-MIROTIC」이 가사 중 'I got you under my skin'가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유해음반 판정을 받았다가 해당 소속사의 행정소송 제기로 법원으로부터 취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같은 소속사의 프로젝트 그룹 SM더발라드의 「내일은…」 역시 ‘술’이라는 단어 때문에 유해음반 판정을 받았다가 지난 3월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의 판결까지 나오자 음악계에선 심의제도가 유신시절과 다를 바 없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성토했고, 음악 팬들과 언론 역시 기준을 알 수 없는 과도한 판정이라며 항의했다. 박주연(경제·08)씨는 “다른 유해한 것도 많은데, 음악에서만 특정 단어로 규제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해 판정의 기준이 매번 달라지거나 모호하다는 비판이 많다. 바이브의 「술이야」는 유해음반이지만,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은 유해음반이 아니다.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 김성벽 과장은 “사후심의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논란이라 생각된다”며 “발매되는 음반 수가 워낙 많아 모니터 과정에서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법학과 박병식 교수는 “현재 심의기준은  조항수도 적고 모호하다”고 비판하며 “심의기준을 더 자세하게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의기준 중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등의 항목에서는 당연히 심의위원 사이에서도 의견 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방안에 대해 놀이미디어센터 김희경 국장은 “심의기준이 세분화되면 오히려 맥락성을 심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국장은 “문학적일 수 있는 가사의 내용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따지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위원들이 조선시대에서 온 것 아니냐”, “심의를 담당하는 사람들 중 가요계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위원회의 정치·종교적 성향과 전문성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청보위 임정희 위원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따지는 것은 보수적인 게 아니라 엄격한 것이다”라며 강경하게 반박했다. 음반심의위원회 이영희 위원 역시 “대중가요는 영상매체와는 다르게 길을 지나다가도 쉽게 들을 수 있다. 특히 무한 반복해서 듣다보면 무의식중에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심의 절차가 엄격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이 위원은 “유해음반 심사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청소년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문제는 많다. 옥준희(경제·07)씨는 “술, 담배 등의 선정적인 소재가 노래에 많아지기는 했지만, 무조건 19세 등급을 매기는 것은 청소년의 의식 수준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영상물에는 15금도 있는데 음반은 왜 무조건 19금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여성가족부는 지난 8월 ‘심의제도 발전방안 마련 토론회’(아래 토론회)를 개최하고, 8월 29일에는 유해음반 심의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그간 ‘청소년 보호’에 대해 강경한 입장과 신념을 보여 왔던 것에서 많이 물러선 것이다. 대중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여론과 더불어, 법원의 취소 판결 등도 압박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개선안에는 △업계 자율심의 활성화 △재심의 청구제도 △12세, 19세 등급제 실시 △음악문화계 심의위원 보강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업계의 자율 심사를 청보위 심의에 반영하고, 유해판정을 받은 곡에 대해서도 재심의를 가능케 한 것이다. ‘자율심의제도’는 이미 미국, 일본 등에서는 자리를 잡은 제도이지만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정연(의공·06)씨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업계의 자체 심의가 가능할지, 그것은 얼마나 공정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은 일리 있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는 것은 여성가족부가 대중의 인식과 거리가 멀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YG엔터테인먼트 최성준 기획이사는 “워낙 노래가 많다보니 심의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중의적인 의미를 띌 수 있는 가사들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있게 구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가 뒤늦게라도 여론을 반영하고 적극적인 개선안을 내놓고 있는 만큼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심의제도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주원 기자 shockingyellow@yonsei.ac.kr
사진 배형준 기자 elessar@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