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자인 시대를 맞아 한국의 디자인 현주소를 묻다

'디자인하라, 아니면 사직하라(Design, or resign)'
1979년 영국, 총리에 취임한 마거릿 대처가 첫 각료회의에서 내뱉은 말이다. 30년 전 그는 이미 디자인 시대의 도래를 직감했다.


마거릿 대처의 말은 예언처럼 현재로 이어져 최근에는 경영학 석사(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MBA)를 대신해 미술적 감수성이 경영과 접목된 미술학 석사(Master of Fine Arts, MFA)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MFA는 기업 내 디자인 전략을 총괄하는 최고 디자인 책임자(Chief Design Officer, CDO)로 성장하기도 하는 등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 서울 총괄본부나 삼성, LG같은 대기업들이 CDO를 두고 있는 상태다. 디자인을 빼고는 경영을 논할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디자인, 세계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지역으로

 

세계적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한국의 디자인도 그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전 세계 디자이너 및 기업들이 참가해 디자인 경연을 벌이는 권위 있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IF, IDEA, REDDOT)에서 국내 제품의 수상실적이 꾸준히 증가 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상작으로는 서울역 앞의 첨단 버스 전용 정류장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우수디자인선정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우수디자인(Good Design) 상품에는 GD마크가 부착된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정책기획실 진연탁 대리는 “디자인 선정 사업은 상품의 디자인 수준을 향상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디자인 위상과 미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한 디자인은 지역 문화 육성 사업의 일환이 되기도 한다. 가령 제주 검은오름이 위치한 선흘지역은 특유의 자연환경을 브랜드화 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지역에서는 ‘디자인 농업’ 사업의 일환으로 검은오름의 ‘흑색’ 이미지를 포착해 흑돼지, 흑우 및 블랙컬러 농산물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블랙 푸드 특화마을 조성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사업은 디자인의 지역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디자인, 나누면 더 아름답다

 

무궁무진한 영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디자인’은 이처럼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동시에 사회적 기부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해외디자인나눔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는 신흥경제성장국에 국가 차원에서 디자인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진 대리는 “디자인 관련 현지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지원 대상 국가의 정책입안자 디자인 마인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차원이 아닌 개인적인 차원에서 뜻있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소규모로 재능기부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웰던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디자인 작품을 판 수익으로 목마른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우물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는 작년 9월 콩고민주공화국에 첫 식수펌프를 세워 주는 등 성공적인 재능기부 활동을 수행 중이다. 디자인이 인간 삶을 풍요롭게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날의 칼, 디자인

 

그러나 디자인이 주는 시각적 효과에만 치중할 경우 각종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디자인이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사용된다면 디자인은 도시 브랜드 가치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오용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9ㆍ11 테러로 붕괴된 미국의 세계무역센터다. 로버트 그루딘은 『디자인과 진실』에서 “이슬람 양식의 이 건축물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오만한 도발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테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을 강조하면서 장애인들을 배려하지 않은 채 디자인의 통일성에만 치중한 점자블록을 설치해 저시력장애인들의 강한 반발을 받은 바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 디자인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디자인이 우리 주변에 깊숙이 들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광주 비엔날레, 디자인 코리아, 그리고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등 국내에서 다양한 디자인 행사를 접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디자인 행사들은 이미 우리가 디자인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방증한다. 디자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21세기, 다양한 행사와 활동들을 통해 디자인의 향연을 느껴보자. 

 

김기윤 기자 munamuna@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