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동심, 순수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렸을 때 이후로 인형극을 본 기억이 없다”는 고기현(기계·10)씨의 말처럼 인형극은 어린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정말 인형극은 ‘어린애들’이나 보는 것일까? 

인형을 매개로 주제를 전달하는 연극인 인형극은 사실 긴 전통을 가진 예술 장르이다. 고대 이집트, 인도, 중국에서부터 시작한 인형극은 유럽, 동아시아 등지로 퍼져 현재까지도 수많은 극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유럽 쪽에서는 도시별로 전용 극장도 있을 정도로 대중화 돼있다. 크게 막대인형극, 손인형극, 줄인형극, 그림자인형극으로 나뉘며, 극의 종류에 따라 사용되는 인형만 해도 가지각색이다.

 

인형극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외국에서는 인형극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공연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인형극이 어린이들만을 위한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극단 ‘로.기.나래’ 대표 배근영씨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퍼졌던 첫 인형극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TV 프로그램의 손인형극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인형극은 오히려 어른에게 더 적합한 공연 장르일 수 있다. 해외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유명 번역 작품들은 대개 어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형극 배우 김도영씨는 “번역 작품에는 부부간의 성적인 유머나 철학적인 내용들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어린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인형극이 어른을 위한 장르이기도 한 또 다른 이유는 인형들의 구조적인 기능과 섬세한 움직임에서 나오는 예술성을 어린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마리오네트의 경우 인체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인형에 모든 관절을 만들어 얼굴 표정까지도 움직이게 한다. 극단 ‘보물’의 김종구 대표는 “어린이들은 마리오네트 공연을 보고 단지 신기하다에 그칠 뿐이지만 어른들은 실제 사람과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동작에 감동 이상의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게다가 어린이들의 집중 시간이 어른에 비해 짧다보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인형극은 공연시간이 비교적 짧아 극이 복합적인 사건 없이 단순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손인형극처럼 인형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추구하는 경우 인형의 동작이 다소 느릴 수밖에 없는데, 어린이들은 여기에 오랫동안 집중하기 힘들다.

 

국내에서 만나는 특별한 공연

국내 인형극인들은 어린이 중심 인형극에서 벗어나, 인형극에 대한 관심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파주 쁘띠프랑스에서는 지난 5월부터 8월 31일까지 ‘유럽 인형극제’가 열렸다. 이 축제에서는 프랑스 리옹의 전용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손인형극 『아메리카에서 온 깃털』이 선보여졌다. 인형은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해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렸고, 대본은 한국정서에 맞게 재구성했다. 인형극 배우 서민경씨는 “쁘띠프랑스를 찾는 관광객층이 대개 연인이나 가족 단위라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인형극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인형극의 메카로 불리는 춘천인형극제는 올해로 23회를 맞이했다. 지난 8월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춘천인형극제에는 해외의 유명 극단들과 국내 전문극단, 아마추어까지 참가해 다양한 종류의 인형극을 선보였다. 춘천인형극제협의회장이기도 한 배씨는 “인형극이 침체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춘천인형극제는 인형극인들이 서로의 공연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민 속에 담긴 그들만의 이야기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형극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국내 인형극단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배울만한 교육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국내 상황은 인형극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해외 유학을 가거나, 꿈을 접게 만든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김 대표는 국내에 인형극전문대학, 전문 서적 등 인형극을 제대로 배울 만한 기반이 없어 러시아 국립연극대학에서 인형극을 배웠다. 배 회장 역시 “인형극을 위한 배움의 장이 생겨야 하고, 이를 위해 먼저 인형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듯 춤을 추는 인형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인형들의 세상 속에는 사실 어른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인형극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한 발자국 다가가 보자. 그 안에 담겨 있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감동적인 철학에 어느덧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최혜원 기자 hellofriday@yonsei.ac.kr
사진 유승오 기자 steven10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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