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신촌이란 어떤 공간일까? △네 개의 사립대학이 모여 있는 대학가 △놀 거리와 마실 거리가 많은 곳 △유흥가 등 신촌을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여기 신촌을 ‘우리 동네’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신촌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신촌민회(아래 민회)’다.

민회는 신촌동·대신동·봉원동 주민들의 ‘풀뿌리 회의체’로, 지난 2000년 이신행 명예교수(뉴욕대·정치이론및사상)와 우리대학교 제자들이 ‘대신교회’, ‘봉원사’, ‘봉원교회’, 인근 대학 및 고등학교 등과 함께 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고,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었지만 신촌민회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민회는 지역주민들을 끌어안지 못해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지난 2005년 재창립했지만 역시 지역민의 참여가 저조했고, 활동을 지속해나갈 내부의 동력도 잃었다. 민회에 참여하던 8개 단체의 지원이 점차 끊겼고, 2010년에는 ‘암흑기’를 보내야만 했다.

신촌민회를 지원하고 있는 봉원교회 박용권 목사는 민회 활동이 “무르익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대학도서관 개방운동을 추진하고, 매달 ‘주민 음악회’, 방학마다 ‘어린이 학교’ 등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민 참여 저조 △민회 확장에 대한 지나친 의지로 인한 방향 상실 △민회를 주도할 주체의 부재 등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회는 올해 다시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고 있다. 새롭게 민회의 살림을 맡고 있는 하수용 사무국장은 민회를 “‘지역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는 모토로 활동하는 지역운동 단체”라고 소개했다. 또한 박 목사는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민회의 사업을 다시 마을차원으로 접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회는 지난 3월, 3년 만에 다시 ‘마을 음악회’를 개최했고, 4월에는 주거권 논의를 위한 논단과 ‘원룸 축제’를 열어 지역 청년들을 만나기도 했다. 5월에는 ‘에너지 자립’과 관련한 논단을 개최했다.

민회는 ‘체화당’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과 만나고 있기도 하다. 체화당은 이 교수가 자신의 집 1층과 지하층을 내놓아 만든 북카페로, 지역 주민들에게 쉼터가 되고 있다. 기자가 체화당을 찾았을 때도 카페지기에게 “컴퓨터 전원이 안 켜진다”며 도움을 청하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손님도 있었다. 박 목사는 “원룸에 살며 외로워하는 주변 학생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민회에 대해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자평했다. 또한 그는 “신촌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이곳이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었으면 한다”며 “나그네로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으로 살기 보다는 지역 주민으로서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꼭 신촌 일대에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신촌을 구성하는 ‘마을 주민’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에게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은 부족했다. 신촌의 지역 정체성을 가꾸고 지켜나가고 싶은 이들에게 민회와 체화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앞으로는 민회의 활동이 무르익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한다.

정주원 기자
shockingyello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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