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택의 기로에 서다

“영혼 없는 교육으로 가는 지름길”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두고 서울대 교수와 학생들 4백여 명이 반대 성명서를 냈다. 법인화란 한마디로 일반 사립 대학교처럼 학교의 운영을 이사회에 맡기는 것이다. 현재 국립대의 운영권은 국가에 있기 때문에, 국립대에서 해외의 유명 교수를 영입하려고 해도 행정규제로 인해 쉽지 않다. 만약 이사회가 운영권을 맡게 된다면 정부의 간섭을 덜 받기 때문에 학교를 좀더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율성을 얻는 대신 경영의 책임도 모두 대학에게로 가게 된다.

경쟁이라는 처방전

이러한 국립대 법인화는 현 정부의 교육부문에 대한 입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현 정부는 국내 대학 간의 경쟁을 통해 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법인화뿐만 아니라, 대학입시 자율화 정책이나, 대학평가 및 재정지원 연계의 강화를 통해 정부의 교육 정책은 ‘경쟁’을 권유한다.

사실 대학의 발전에 대해서는 사회적 요구가 큰 상황이다. 중앙대 영문학과 강내희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은 양적인 대성공을 거뒀으나, 대학교육의 질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지난 40여 년간 대학의 설립과정은 어렵지만 그 후의 경영은 어렵지 않다는 의식이 만연했다. 그 결과 실질적인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대학이 설립돼 대학의 질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가 내린 ‘시장 속의 경쟁’이라는 처방전은 어느 정도 약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은 산업?

그런데 어째서 서울대 교수들과 학생들은 법인화된 대학 교육을 “영혼 없는 교육”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일까. 강 교수는 이것에 대해 “교육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라고 지적하며 “교육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느냐, 아니면 전처럼 학문의 전당으로 보느냐에 달렸다”고 전했다. 만약 교육이 하나의 산업이라면 그 경영은 기업의 경영과 같은 궤도로 가야할 것이다. 교육을 통해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두산 기업의 중앙대 인수 건을 통해 단적으로 나타난다.

지난 2008년 6월, 두산 기업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대대적인 학제 개편과 학과 및 교수들에 대한 상시적인 평가 등 강도 높은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학제 개편으로는 대외 경쟁력이 있는 학과 육성, 유사·중복 학과 통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어문계열은 목표에 어긋난 과로 판정받았고 일어일문· 중어중문·비교 민속학 전공은 ‘아시아 문화학부’로,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 문학은 ‘유럽문화학부’로 통합됐다. 언어적 특성이 다른 과들을 하나의 학부로 묶어버린 이 결정은 관련 학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중앙대는 매년 국내 대학 경쟁력이 높아지는 성과를 얻었기에 이러한 비난은 두산 기업의 선택을 뒤바꾸지는 못했다.

혹은 학문의 전당

앞서 말한 국립대 법인화와 두산기업의 대학 구조조정 뒤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조가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생산성을 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문을 선택해야하고 거기에 집중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선택되지 못한 학문은 고사될 가능성도 있다. 강 교수는 “서울대의 법인화가 대학의 기업화로 연결되고 이에 따라 기초학문이 약해질 수 있다”고 봤다. 기초학문은 모든 학문의 기본바탕이나 가시적인 성과는 크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적 선택 안에 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강 교수는 “기초학문은 대학의 본질이고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는 이상,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대학은 그 자신의 본질을 지킬 의무가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줄타기, 이것은 대학사회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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