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나노튜브와 그래핀의 만남

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는 2054년 워싱턴 주의 경찰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미래 경찰이 쓰는 소위 ‘간지템’들을 많이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투명 스크린이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선다. 그러나 그가 클릭을 하자, 갖가지 투명 스크린이 허공에 떠오르고, 그는 필요한 정보만 손으로 취합하여 하나의 스크린에 정리한다. 이렇게 ‘간지’나는 아이템은 2054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이영희 교수 연구팀은 아니라고 답한다.

이 교수의 연구팀은 지난 4일 투명하면서 잘 휘어지는 메모리 소자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메모리 소자가 휘어지기 위해서는 그 안에 전극과 반도체가 모두 휘어져야 하고 휘어진 상태에도 작동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금속 대신 탄소를 택했다. 반도체는 탄소 나노튜브로, 전극은 탄소 그래핀을 택했다.

사실 나노튜브와 그래핀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되지 않은 물질들이다. 원래 탄소는 흑연과 다이아몬드로만 그 결정체가 알려져 왔다. 그러다 지난 1991년 이지마 박사의 연구에서 탄소 나노튜브를 발견했고, 2004년엔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교수가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하는 과정 중에 그래핀을 발견했다.

각각의 물질은 20세기를 지배했던 알루미늄, 철 등의 물질보다 더 뛰어난 특성들을 보여 21세기를 이끌어갈 물질로 평가받고 있다. 예를 들어 나노튜브 같은 경우엔 매우 강한 기계적 강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 핸드폰 액정과 나노튜브를 활용한 액정을 망치로 두드렸을 때, 전자는 산산조각나는 반면 후자는 멀쩡하다. 또한 매우 우수한 전기전도도를 가지고 있어 반도체로도, 금속체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핀은 10년 앞서 발견된 나노튜브 형님보다 더 신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물질은 상온에서 구리보다 1백배나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백배 이상 빠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또한 빛의 투과율이 98%다. 선글라스가 65%의 투과율로도 앞이 잘보인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래핀은 투명하다못해 물질자체가 보이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신축성도 좋아 잡아늘릴 수도 있고 휘어도 전기가 지속적으로 전달된다.  

태어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능력넘치는 탄소 형제들이 함께 사용된 사례가 바로 이 교수의 투명 스크린이다. 그래핀은 원래 성질자체가 투명한데, 탄소 나노튜브는 무슨 수로 투명하게 했을까. 이 교수는 “아무리 밀도가 높은 고체 물질이라도 최대한 얇게 만들면 투명해진다”며 “탄소 나노튜브도 얇게 자르면 투명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의 연구팀의 경우, 진공공간에서 촉매와 메탄을 함께 넣고 열을 가했다. 그 결과 형성된 나노튜브를 얇게 떠서 투명한 나노튜브를 얻은 것이다. 이는 ‘열화학 기상법’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투명한 스크린이 상용화 단계까지 완벽하게 도달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교수는 “우리 연구팀은 상용화까지 왔다고 믿고 싶지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는 있다”고 전했다. 이 메모리 소자에는 반도체와 전극 말고도 절연막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전류를 완전하게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교수 팀은 모든 소재를 휠 수 있는 물질로 찾다보니 고분자 재료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고분자 재료는 누설전류를 생기게 한다는 점이다. 이름만 절연막인 것이다.

위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투명하고 유연한 스크린은 영화처럼 2054년이 아닌 그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예측이다. 이 교수는 미래의 아침 시간을 이렇게 상상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침밥을 간신히 챙겨먹고 정신없이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문을 찾아 길거리를 찾아헤메지는 않습니다. 일단 투명 스크린을 가방에 막 구겨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버스 옆에 있는 신문 다운로더기에서 스크린에 신문을 다운받을 겁니다. 그러면 버스에서 편하게 스크린을 펼쳐서 보면 되죠.”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자료사진 이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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