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마드 퍼퓸 코리아의 정미순 조향사를 만나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을 매혹시키는 것이 향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그 효과에 굴복할 뿐이다.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누구나 자신만의 향을 가지고 있다. 그 향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그들과 가장 어울리는 향기를 만들어주는 여자, 갈리마드 퍼퓸 코리아의 정미순 원장을 만나봤다.

향수와의 만남 

조향사는 화장품, 향수, 식품을 위한 향료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그 안에서도 다양한 향을 조합해 △이미지에 맞게 향수를 디자인하는 퍼퓸 디자이너 △새로운 향을 개발하거나 제품에 향을 부향하는 퍼뮤머 △식품향을 만드는 플래버리스트로 구분된다. 조향사는 보통 두 가지 길로 나갈 수 있다. 화장품 회사나 향수 회사와 같은 일반 기업체에서 일하거나 프리랜서 조향사로 활동하는 것이다. 정 원장의 경우 갈리마드 퍼퓸 코리아를 설립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에스티 로더*의 전기를 읽고 난 후 조향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정 원장은 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우리대학교 화학과로 진학했다. 당시 국내에는 조향사를 위한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졸업 후 일본의 조향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에는 여전히 조향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부재했다”며 “그런 국내의 열악한 상황이 직접 향수 스튜디오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프랑스로 가 향수전문회사인 갈리마드에서 본격적인 조향교육을 받고 국내 허가장를 취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갈리마드 퍼퓸 스튜디오를 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비조향사를 배출하기 위한 체계화된 교육시스템을 갖춘 갈리마드 퍼퓸 앤 플래버 스쿨을 설립해 두 기관을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향기 가득한 하루

프리랜서 조향사인 정 원장의 하루는 향을 체크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향은 만들었을 때부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에 그날 그날 점검이 필요하다. 향 체크가 끝나면 향료에 쓰이는 원료를 점검한 후에 향수 제작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정 원장의 말처럼 맞춤향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상담과 검사가 선행돼야 한다. 주문한 사람의 심리, 성향, 좋아하는 것에 대한 파악이 끝난 후에야 다양한 샘플이 제작된다. 정 원장은 “원료의 성향에 따라 블렌딩해서 나올 수 있는 향기의 종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조향사들의 감각에 따른 조화로운 향료의 조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후 일정은 조향 교육에 맞춰져 있다. 자신이 조향사의 꿈을 꾸었던 시절, 교육 기관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정 원장은 예비 조향인들을 위해 힘쓰고 있었다.

내가 아닌 너를 위한 향

언제나 향기에 둘러싸여 있는 조향사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만을 골라 맡을 수는 없다. 고객에게 가장 어울리는 향수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특정 향을 선호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심리 검사를 바탕으로 맞춤 향수를 제작하다 보면 주관적으로는 별로라고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지만 조향사는 무엇보다 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후각적인 능력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민하다는 것과 감각이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좋은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분석의 측면에서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향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어떤 향료를 어떻게 조합하면 가장 좋은 향기가 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감각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조향사라는 직업 뒤에는 미개척 분야에 도전했던 그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조향사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지금,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향을 만들어가는 조향사의 미래는 더욱 밝다.

*에스티 로더: 미국의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의 창업주

 

 


최혜원 기자 hellofriday@yonsei.ac.kr
사진 유승오 기자 steven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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