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ㆍ유럽 최고의 축구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펼쳐진다. 여기에 16강부터는 토너먼트제가 더해진다. 두 팀이 각자의 홈구장에서 경기를 펼쳐서 이긴 한 팀이 상위 단계로 진출하는 것이다. 한 팀이 두 경기를 모두 이긴 경우는 상관이 없지만, 승패가 갈리는 경우에는 득실의 합을 계산한다. 이때 상대팀의 홈구장에서 올린 득점은 더 크게 계산한다. 불리한 구장에서 득점에 성공했으니, 그 득점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이다. 국내정치에서도 비슷한 제도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선관위가 차기 총선 도입을 목표로 발안한 ‘석패율제’가 그것이다.
 석패율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서만 시행돼 온 제도이다. 중대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기존 중대선거구 제도상 당선이 가능하나, 소선거구제에서는 아쉽게 탈락하게 된 후보를 구제하는 방안인 것이다. 우리가 도입을 준비 중인 석패율제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성격이 더욱 강하다. 특정 정당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선전한 후보를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다. 지역주의를 국내 정치 후진성의 원흉으로 지목했던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석패율제의 도입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의원을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지난 18대 총선의 결과가 잘 말해준다. 당시 민주당이 전통적인 약세 지역인 영남에서 지역구 의원 두 명을 배출해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그 두 명의 의원 배출이 지역주의 타파에 미친 영향은 냉정히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당적을 초월한 의정활동을 펼쳐왔는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려울 뿐 더러,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도 지역주의 구도가 여전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수의 민주당 의원 배출이 지역주의 구도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했음을 의미한다. 
 석패율제 시행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더욱 왜곡시킬 가능성도 안고 있다. 지역구 의원 숫자를 줄이지 않고 현재안대로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사실상 지역구를 대변하는 의원의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 반면 직능대표의 성격이 강한 기존 비례대표의 숫자는 줄어들게 된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지역구 의원의 숫자가 비례대표에 비해 현저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패율제의 도입은 지역이기주의를 심화시키고 정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역주의 구도 타파를 위해서도 좋은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는 토너먼트가 아닌 기나긴 리그라는 점이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현 상황뿐만 아니라, 미래에 변화할 정치지형도까지 고려해서 제도의 문제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새로운 이해관계의 형성을 의미한다. 만약 신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개정하려 할 때는 새롭게 형성된 이익집단의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석패율제의 도입에 앞서, 신제도의 도입이 과연 우리 정치를 공정하고 건강한 리그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대학교 배강현(신방ㆍ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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