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소방서를 찾아가다

어느 날, 영등포의 한 주택 3층에 화염이 치솟았다. 신속히 출동한 소방관들이 불을 끄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이를 구경하던 시민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시민들이 가리키는 창가에 한 할머니가 간신히 불을 피해 앉아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도와달라는 외침도 없이 조용했다. 할머니를 구조한 박영동 소방관은 “왜 소리를 쳐 알리지 않았냐”고 다그쳐 물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고,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박 소방관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본지에서는 우리대학교를 포함한 서대문 지역의 안전을 책임지는 서대문소방서를 찾아 소방대원들의 역할에 대해 알아봤다.

응급상황에서 더 빨리 도망치고 싶다면

홍제천 서대문구 어린이 축제에서 한 어린이가 물대포를 뿌리고 있다.
 

“도와주세요!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지난 5월 5일 홍제천변, 한껏 부푼 아이들의 마음만큼이나 포근한 날씨 속에 서대문구 어린이 축제가 열렸다. 그런데 아이들의 즐거운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난데없이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무슨 일인가 달려가 보니 한 어린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네킹의 가슴을 누르며 낑낑거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빨간 소방차 앞에 서 있는 소방관의 키도 지나치게 작은 것 같다. 어찌된 일일까.

서대문소방서(아래 소방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어린이 소방체험 행사를 마련한 것. 체험장에는 각종 소방장비가 전시되고 어린이들은 직접 소화기 작동, 심폐소생술, 방수훈련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실제 소방관 복장을 입고 방수체험에 참여한 민준홍(14)군은 “장비가 무거워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며 “소방관 아저씨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소화기 작동법을 알려주던 이상호 안전교육관은 “어린이들도 소화기 작동법이나 심폐소생술을 익혀놓으면 실제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며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위급한 응급상황을 대비한 훈련이지만, 소화기를 당기거나 마네킹을 다루는 아이들은 시종일관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한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소화전을 뿌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특별한 날마다 소방서에서는 체험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행사가 열리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예약을 통해 언제든지 안전체험을 해볼 수 있다. 소방서 건물 4층에는 소화기 체험, 연기대피 체험, 완강기 체험, 지진체험을 할 수 있는 안전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을 방문해 직접 ‘화재연기체험실’에 발을 들인 기자는 자욱한 연기와 캄캄한 미로 속에 들어가자 가상인걸 알면서도 겁이 덜컥 났다. 어둠 속에 조심스레 발을 들이자 갑자기 바닥이 덜컹 움직여 소리를 지를 뻔하기도 했다. 임기철 소방관은 “실제 상황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겁을 먹고 당황하게 된다”며 “이런 훈련을 통해 응급상황에 보다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면, 소방서 체험관을 한번 예약해 보는 건 어떨까.

소방관의 하루 

안전체험 역시 시민들을 위한 소방관의 업무 중 하나이지만, 역시 ‘소방관’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빨간 불자동차와 구급차이다. 서대문 지역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많은 소방관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묵묵히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소방서의 업무는 크게 △소방행정 △예방 △대응관리로 나뉘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현장 출동 업무는 소방서 1층에 위치한 연희 119 안전센터에서 맡고 있다.

소방행정과에서는 주로 내부적인 행정을 처리하며 소방홍보와 교육, 재난촬영을 맡고 있다. 예방과는 대형건물의 안전관리를 담당하며 검사지도, 위험물 안전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대응관리과는 소방훈련을 총괄하는 곳으로 가상훈련을 계획하고 실시하며, 화재원인을 분석해 적절한 진압대책을 세우는 일을 한다. 특히 이 같은 훈련을 꾸준히 해온 결과, 서대문 소방서는 ‘2011 소방기술 경연대회’에서 서울지역 1등을 했으며 2009, 2010 2년 연속으로 소방서 성과평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응관리과에 신종철 담당관은 “속도방수훈련이나 구조구급훈련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신속한 동작으로 상황을 진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연희 119 안전센터 옆에 위치한 차고에 들어가자 엄청난 크기의 대형 차량들이 즐비해 있다. 이곳에서 기자가 빨간 불자동차 외에도 지휘차, 펌프차, 탱크차, 화학차, 굴절차 등의 생소한 차량들을 정신없이 구경하던 중,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출동명령이 떨어진다. 그러자 소방관들이 빠른 속도로 뛰어나와 순식간에 출동을 한다.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을 수밖에 없는 재난현장을 향해, 그들은 그렇게 질주한다.

재해현장에 직접 들어가 진압을 하는 소방관들이 겪어야하는 위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년 동안 소방관으로 근무해 온 박 소방관은 그동안 사고로 동료들을 잃는 아픔을 몇 번이나 겪어야 했다. 그 역시도 화재를 진압하다가 사다리가 흔들려 목숨을 잃을 뻔했다. 순직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그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곳에, 위험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뛰어드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일”이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명의식”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방대원들의 생명 수당은 5만원이다. 평균 수명은 58.8세로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보다 18살이나 적다. 이처럼 턱없이 낮은 처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명을 구한다는 소명의식’이다. 처음에 소개했던 화재 사고에서 박 소방관이 구조한 할머니는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을)알게 된 순간, 저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분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답답했을지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거죠. 소방관을 그만두려 했던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이 사건처럼 내손으로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이 위안이 돼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서 미국 소방관 앨빈 윌리엄 린이 쓴, 소방서마다 비치돼있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글이 떠올랐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사진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