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다

경상북도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를 숭상했던 선비의 고장이었다. 삼봉 정도전을 비롯해 유수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고, 풍기군수로 재직했던 퇴계 이황과도 인연이 깊다. 주세붕의 백운동 서원을 모체로 한, 최초의 사학이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도 영주에 자리하고 있다. 2011년에 찾아간 영주는 여전히 고즈넉했고, 빨라지는 세상사에 지친 심신을 잠시 달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다보면 소수서원, 선비촌, 소수박물관의 표지판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선비촌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다다르자  거대한 영주 선비상이 서있었다. 2미터가 넘는 큰 풍채와 서적을 들고 있는 모습이 선비의 학구열과 꼿꼿함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선비촌의 명물인 선비상은 관광객들에게는 비로소 선비의 고장에 들어왔음을 실감케 한다. 선비상을 지나면 보이는 두갈래길에서, 소수서원으로 향하는 오른쪽 길을 뒤로하고 왼쪽길로 가면 선비정신의 텃밭인 선비촌에 당도할 수 있다.

선비촌의 담벼락이 높지 않은 까닭

산속에 위치해 자연경관도 뛰어나지만 선비촌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는 고택이다. 선비촌의 고택은 총 열 두 채가 있고, 무쇠공방과 방앗간, 강학당 등의 마을 공동 건물이 갖춰져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마치 조선시대의 한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특별히 담벼락이 눈에 띄었는데, 선비촌의 담벼락은 집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높지 않다. 저렇게 나즈막한 담벼락이 제대로 도둑을 막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까닭을 물으니 담벼락은 침입을 막는 기능보다도 고택의 경계를 구분짓는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담벼락 하나에도 선현의 유교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신에 입각해 자연경관을 해치는 담벼락을 높게 쌓지 않았던 것이다.

고택에 깃들어있는 유교의식

원래 영주에는 기와집과 초가집 고택이 많았는데, 이러한 집들의 형태를 모아 복원해놓은 것이 선비촌이다. 단지 고택의 복원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실제 생활터전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집집마다 고무신이 놓여 있고, 진짜 가마솥과 장독대, 장롱 그리고 약탕기와 같은 생활용품도 보였다. 곳곳에서 선비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았다.

열 두 채의 고택들은 담고 있는 유교의식의 특성에 따라 네 분류로 나뉜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입신양명(立身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이 네 가지의 유교정신이 고택들에 각각 잘 드러나 있다.

수신제가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꾼다는 의미로, 끊임없는 수학을 강조한다. 그 예로 수신(修身)의 대표적 공간인 강학당에서는 자기수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선비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은 옛 전통을 배우는 공간으로 활용돼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입신양명의 공간에는 ‘사회에 진출하여 이름을 드높인다’는 그 뜻에 걸맞게 중앙관직에 진출했던 집안인 인동장씨종가와 두암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두 고택에는 관직에 나가 다양한 활동을 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양반의 고택이라고 화려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데 있어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의 거무구안의 고택에는 인간중심이 아닌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갈 길을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또한 초가집에 살아야 하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양반의 지조를 잃지 않는 모습을 통해 ‘도를 깨닫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지 가난을 걱정하지 말라’는 우도불우빈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선현들은 잠시라도 이러한 정신을 잊을까 걱정한 듯 각 고택의 출입문과 집 안 방문의 기둥마다 주련(柱聯)*을 붙였다. 여기에는 주로 미풍양속을 담은 교훈구나 한시와 같은 유교문학과 관련된 것이 쓰여있어 당시 문화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고택에는 집 안쪽부터 구석구석 유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느린 마을을 찾는 빠른 사람들

선비촌에서는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선비촌의 정취는 반나절이면 대략 다 느낄 수 있고, 다시금 빨리 돌아가는 현실이 생각난다. 많은 유희거리를 제공하는 도시에 비해 선비촌은 다소 무료할 수도 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시간을 내서 찾아온다. 송희동 관리실장은 “많은 관광객들이 선비의 자취를 살펴보면서 삶을 성찰하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 같다”며 “서울에서 워크샵이나 세미나를 하기 위해 일부러 선비촌의 강학당을 찾는 관광객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선비촌은 안동하회마을, 외암리민속마을과 함께 국내 대표적 에코박물관으로 꼽힌다. 에코박물관은 지역 고유의 역사와 건축양식, 자연환경, 생활환경 등을 그대로 보존·계승하면서 이를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독특한 형태의 전시방법을 지칭한다. 이 방식은 주민들이 직접 문화재 홍보 및 운영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친근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전시 이외에도 숙박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보통의 문화재는 ‘들어가지 마시오’의 팻말 때문에 눈으로만 봐야했던 것과는 달리 선비촌의 고택들은 대부분이 들어가고 묵을 수도 있어 살아있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꼭 숙박하지 않더라도 선비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다. 선비의 옷을 입고 실제로 선비들이 수학했던 공간인 강학당에서 전통예절 및 다례교육을 받거나  한국전통의 소리와 농악의 장단을 배워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더불어 도자기, 매듭, 한지, 천연염색, 짚풀 등 다양한 전통재료를 활용해 기념품을 만들 수도 있다. 송 실장은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해 “더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방학과 같은 시즌에는 단체관람객을 비롯해 체험을 원하는 신청자가 많다”고 전했다.

선비촌 축제

13일(금)부터 선비촌과 소수서원 등의 장소에서 ‘2011년 영주선비문화축제’가 4일간 열린다. 이번 축제를 통해 영주는 선비의 고장으로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을 목표한다. 타악공연과 무용단 초청공연과 같은 전통문화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킨 한복 패션쇼와 같은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축제는 4일간 진행되지만 선비촌의 산과 나무와 고택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선비촌이 선사해주는 한적한 즐거움을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주련: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


박미래 기자  elf_in_miwoo@yonsei.ac.kr
사진 이다은, 유승오 기자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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