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이미지로 포장된 상술

요즘은 드라마보다 TV 광고가 오히려 더 재밌는 세상이다. 웬만한 영화 못지않게 화려한 특수 효과를 사용한 광고나 뮤직 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감각적 영상의 광고들 사이에서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는 광고를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광고의 경향도 많은 변천을 겪는다. 얼마전까지는 코믹 광고가 주를 이루더니 요즘은 ‘이미지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상품과 무관한 듯한 영상만을 보여주는 광고’를 일컫는 이미지 광고에는 주로 ‘티져(TEASER) 기법’이 사용된다. ‘티져’란 ‘지분거리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호기심만 부추기고 물건의 소개는 일체 생략하는 ‘살 마음이 생기게 하는 광고’로 정의된다. 구구절절 대상의 기능을 소개하고 구매를 강요하는 예전의 광고에 식상한 소비자들은 시선을 확 끄는 영상만을 대뜸 던져놓고 약을 올리듯 홱 사라지는 이미지 광고에 어리둥절하다가도 이내 흥미를 갖게된다.
이미지 광고를 이용한 마케팅의 성공적 사례가 신세대를 겨냥한 ‘TTL’ 광고다. 이국적 인상의 소녀와 박제된 물고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전혀 해독할 수 없는 화면만을 보여주다가 끝에 가서야 나지막하게 “TTL”이라고 고작 한마디만을 속삭인다. 청바지 브랜드 ‘옵트’ 역시 이미지 광고에 해당한다. 남녀 모델이 시리도록 차가운 물속에서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화면엔 물의 온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뜬다.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이것이 물과 같은 색깔의 신제품 청바지를 선전한 광고란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외에도 스타크래프트 영상을 배경으로 한 ‘ⓝ016’ 광고도 이미지를 활용한 사례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이미지 광고의 주대상이 20대 초반을 전후한 젊은이들이란 점이다. 이미지 광고를 사용하는 것도 핸드폰, 컴퓨터, 캐쥬얼 의류 등 신세대들을 주 소비대상으로 설정한 제품들이다. 스토리보다 ‘화려한 영상 중심’의 왕가위식 영화에 열광하고 음악 못지않게 뮤직비디오가 중시되는 이들에겐 무미건조한 ‘해설식’ 광고보다 ‘눈으로 말하는’ 이미지 광고가 더욱 민감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전략 이면에 신세대들에 대한 선입견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통신’ 광고에서 아이들의 실뜨기 놀이를 통해 ‘네트워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사물 하나하나에 함축적 의미가 깃들여진 이미지 광고가 아닌, 카메라 기교가 만들어 낸 흔들리는 화면과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겉멋’만 부린 이미지 광고는 의미의 전달 없이도 신세대들의 눈을 쉽게 끌 수 있으리라는 제작자의 기대가 숨어있는 것이다. 더구나 소비율이 높은 부류일수록 이미지 중심 광고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는 연구보고서를 따르자면, 이미지를 남발하는 신세대 대상의 광고는 이들을 소비지향적 세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세대들 전체를 생각하기 싫어하고 단순히 눈요기할 감각적인 영상만을 좇는 집단으로 일괄해버리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이미지만을 내세우다보면 일시적 화제를 모을지는 몰라도 금방 관심이 식어버리기 때문에 지속적 성과를 이루기는 어렵죠”라는 제일기획의 민우암씨 말처럼 신세대를 겨냥한 튀는 광고라고 해서 바로 판매율로 이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신세대들이 화려한 영상에 쉽게 주머니를 털만큼 어리석지도 않을 것이다. 알맹이 없이 허공에 떠다니는 이미지만을 현란하게 나열하는 식의 광고는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미지를 내세우더라도 내용이 알차게 심어져 있어야 한다. 광고 제작자들의 궁극적 목적이 ‘쇼’가 아닌 ‘실속’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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