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얽힌 코미디 한판

최근 등급보류판정을 받은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을 둘러싸고 다시금 ‘표현의 자유와 관습·제도의 검열’이라는 문제가 영화계의 중심 화두가 되고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헌법이 명기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현행 영화진흥법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 사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영화법이 담지하고 있었던 영화작품에 대한 사전검열(심의·삭제) 조항이 지난 96년 여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은 후 영화진흥법으로 개정될 당시 주요 쟁점은 따라서 심의·삭제 없는 ‘완전등급제’의 실시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편으로 ‘등급외전용관’ 설치 운영에 관한 조항을 명문화할 것에 모아졌던 것이다. 그것만이 표현의 자유를 가시적으로 보장해주는 유일적법한 대안임을 영화연구자, 평론가, 창작현장의 종사자들이 연대하여 줄기차게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고 불완전·불명확한 규정으로 인해 끝없는 분란의 소지만을 법규에 담아놓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현행 영화진흥법에 의하면 ‘모든 관객 관람가’, ‘12세 미만 불가’, ‘18세 미만 불가’ 등 세가지 등급 구분 밖에 없고, 등급분류위원회(아래 등급분류위)가 18세 이상의 성인관객에게마저 상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영화에는 3개월 등급보류판정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바로 이 조항은 문제된 영화의 특정장면에 대한 사실상의 삭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제작자나 연출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극장상영과 관객의 볼 권리를 원천봉쇄하는 결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독소조항이다. 그런데 생각을 좀 달리 해보자. 가령 완전등급제를 도입할 경우 위와 같은 문제영화에 대해 19세 이상 성인 관객의 일반정서에도 명백한 위해요소가 있다고 등급분류위가 관련조항에 의거하여 판단했다면 ‘등급외 등급’을 주면 그만이다. 그러한 영화는 ‘등급외 전용관’으로 가서 상영을 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이때 제작자, 감독은 스스로 판단해 볼 때 문제장면을 자진 삭제·수정하여 18세 미만 등급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고 더 많은 흥행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등급외 전용관은 극장수, 극장의 제반환경, 관객들의 수준 등 여러가지 여건에서 정상적 개봉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급분류위는 법과 규정에 따라 등급판정을 해주면 그만이고, 제작자나 감독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표현 수위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시비 없이 그 내부에서 그만큼의 자정능력을 발휘하고 보다 다양한 표현 양식을 계발하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되므로 영화의 질적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관객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고 관람하는 데 있어 지금과 같이 불필요한 제재 때문에 매스컴에 오르내려 궁금증만 증폭된 영화를 굳이 관람하고 허탈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문제의 청소년 관객을 보호·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시대착오적 구태이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다행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의 답변에서 완전등급제와 등급외 전용관 설치를 법제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한가지 우려되는 바는 이번 논란과 정부의 의지가 바뀌는 데에 기폭제가 된 영화 『거짓말』과 관련해서다. 이 작품은 현재의 등급보류 결정과는 상관없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파노라마 부분에 초청되어 상영될 예정으로 있다. 국제영화제 설치운영 약관을 보면 3회 이상 국제규모의 영화제를 치른 곳에서는 등급보류와 관계없이 상영이 가능하다. 이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 나라 안에서 누구는 관람하고 누구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빚어내는 것인데, 사정이 이럴 바에야 등급분류위가 하루빨리 이 영화에 대한 보류결정에 대해 재심의를 해서 등급을 주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년에 법개정이 추진되고 국회에서 통과되어 실행되기까지 이 영화가 묶여 있게 된다면 그동안 혼란의 와중에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많은 관객들은 궁금증 때문에 편법을 동원하여 이 영화를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등급분류위는 그 기간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서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 괴로울 것이고 제작자와 감독에게도 커다란 비용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모든 것이 시대착오적인 법규와 운영주체들의 전근대적 사고가 빚어 놓은 한바탕 코미디판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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