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정신을 담은 새로운 광화문 현판을 기다리다

“한 마디로 괴롭다.”

서예계의 원로 조수호씨가 지난 2010년 8월 15일 새로 복원된 광화문 현판을 보고 「중앙일보」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어 조씨는 “나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데 복원된 현판은 복사해 확대한 것이라 기백과 기상, 생명력이 전혀 없이 획 하나하나가 죽어 있는 글씨”라고 전했다. 「중앙일보」에서 광화문 현판에 대해 14명의 원로 서예가에게 조사한 결과 11명이 현판 글씨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이렇게 서예계로부터 큰 지탄을 받은 현판은 지난 2010년 4월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위원회에서 고종 시절 현판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원칙 하에 당시 현판을 썼던 영건도감 제조 임태영 훈련대장의 글씨를 확대해서 본뜬 것이다. 이재서 문화재청 사무관은 “광화문 현판 글씨가 너무 커서 그 위에 직접 쓸 사람도 없었고, 붓도 없어 현실적으로 모본의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예가들의 글씨 자체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현판이 한자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번 한자 현판은 지난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썼던 ‘광화문’ 한글 현판을 대신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글에서 한자로 회귀하는 것은 시대 정신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일고 있다. 장안대 사회학과 유종림 교수는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상징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간판이든, 한자 간판이든 현판을 걸 때는 그 현판이 앞으로 가질 의미를 조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어떤 현판이 걸릴지 국민이 다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비판을 받았던 한자 현판은 만들어진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금이 가버려서 결국 새로운 현판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그리고 현재 가장 주목받는 논의는 한글 현판이다. 지난 2월 11일 서울 기독청년회 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김을동 의원, 박진 의원, 그리고 김종택 한글학회장 등이 모여서 시민들과 광화문 한글 현판 달기 촉구 결의안을 냈다. 그리고 그 실천적인 방안으로 ‘광화문 한글 현판달기 1백만인 서명운동’를 시작해 3월 1일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한말글문화협회 같은 경우, 만주어가 아닌 중국의 휘장으로 새로 단 천안문 현판의 예를 들며 “문화재에 우리문자가 아닌 타 문자를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경향신문」에 글을 기고했다.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김영환 교수도 “한자를 ‘진문’이라하고, 우리말을 ‘방언’이라 하던 아픈 역사는 단순히 교과서적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위와 같은 한글 현판의 여론화에 대해서 “긍정적이다”고 답했다. 유 교수는 “광화문 현판이 문화재로서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면 그 정신은 단연 민주주의가 돼야할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한글 현판이 국민들의 중론으로 모아진다면 그 현판은 문화재로써 충분히 의미 있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문화재청의 역할은 이러한 여론을 잘 수렴할 수 있도록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것이 유 교수의 의견이다.

국제서법 예술연합한국본부 이사 이기숙 서예가는 「동아일보」에서 “일단 한글현판이 여론으로 모아진다면 옛날 왕비나 왕세자빈의 배우자를 고르는 삼간택 방식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며 “광화문 현판 글씨를 휘호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축제로 승화시키는 것은 어떨까”라고 제의했다. 모든 과정이 축제가 되는 광화문 현판 제작, 이것이 바로 지금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상징이 아닐까.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자료사진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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