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아무개(문정·10)씨는 바람에 넘어가는 입간판에 치일 뻔 했다. 옆으로 스쳤을 뿐이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김씨는 “길을 다니면서 입간판을 의식해 본 적이 없었는데, 입간판이 ‘쿵’하는 소리를 내며 크게 넘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입간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분별하게 거리에 들어선 ‘불법 입간판’은 이처럼 신촌 일대를 더 불편하고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신촌 지하철역에서 우리대학교 정문에 이르는 ‘연세로’, 술집들이 모여 있는 연세로 안쪽의 골목, 각종 유흥업소가 모여 늘 사람으로 붐비는 ‘걷고 싶은 거리’ 등 기자가 직접 찾은 우리대학교 인근의 거리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입간판이 서 있었다. 오히려 입간판이 없는 가게를 찾는 것이 쉬울 것 같아 보였다. 다수의 입간판은 그나마 인도에서 최대한 떨어져 가게 쪽에 붙어 있어 사람들이 통행하기에 큰 불편을 주지 않았지만, 몇몇 입간판은 좁은 인도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ㅎ당구장의 입간판은 찢어진 채로 길가에 방치돼 통행에 불편함을 줬고, 지나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신촌 일대 거리의 무분별한 입간판 문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교에서 만난 대다수의 학생들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대답할 정도다. 그러나 인도 위에 설치된 입간판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의하면 ‘미풍양속 유지’를 해치고 ‘공중에 대한 위해’의 위험이 있다. 김시연(응통·10)씨는 “입간판이 길을 막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입간판은 ‘정비대상’, 즉 불법이다.


상인들은 불법 입간판 설치에 대해, 불경기로 장사가 어렵다보니 넘쳐나는 상점들 사이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세로에 위치한 ㅇ안경점 관계자는 “입간판이 매출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체감하기도 어렵고 불법인 것도 알고 있다”면서도, “다른 가게들이 다 설치하니까 우리만 안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매출과 관련된 상인들의 생존권과 더불어 구청 단속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문제다. △단속 과정에서 입간판을 적발하기 어렵고 △‘눈감아주기’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업소들의 수가 많아 통제가 힘들기 때문이다. 신촌의 걷고 싶은 거리 골목 안쪽에 위치한 ㅍ식당의 관계자는 ‘길가에 세워둔 입간판이 단속에 걸리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속을 돌 때는 입간판을 넣어 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구청에서도 골목 안쪽 가게들이 하도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을 아니까 통행에 불편만 없게 하면 봐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길가에 세워둔 ㅍ식당의 입간판은 바람에 쓰러져 보행자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었다.

 
서대문구청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불법 입간판 설치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제46조에 의거해 약 1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벌칙 부과가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옥외광고물을 단속하는 건설관리과 광고물정비팀 관계자는 “입간판을 내 놓는 것 자체가 장사가 안 되는 영세업소에서 하는 것인데, 과태료를 원칙대로만 부과하면 그 사람들도 힘들지 않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광고물정비팀 관계자는 “신촌에 워낙 업소가 많다보니, 오늘 한 업소의 입간판을 철거해도 내일은 다른 업소에서 입간판을 내 놓는다”며 “제한된 인력으로 신촌만이 아니라 서대문구 전체를 순찰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성수 교수(법과대·행정법)는 “영세업자들의 생존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입간판으로 인해 보행자는 통행의 안전, 신체적 훼손 등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법과 공공의 권리를 위해 1~2년의 기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입간판을 철거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신촌 일대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등 국제적인 명소가 되고 있다”며 “올바른 거리질서를 세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결코 상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촌 지역은 인근 지역 대학생들만의 공간도, 신촌을 찾은 시민들만의 공간도, 신촌 영세 상인들만의 공간도 아니다. 이 공간을 이루고 생활하는 많은 이들의 쾌적한 공존을 위한 배려와 원칙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주원 기자 shockingyellow@yonsei.ac.kr
사진 유승오 기자 steven10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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